[뭐라노-이거아나] 항공기 비상문

허시언 기자 hsiun@kookje.co.kr  |  입력 : 2023-06-01 17:21:08
뉴스레터 ‘뭐라노’의 마스코트 라노입니다. 라노는 이번 주 ‘이거 아나’에서 소개할 시사상식 용어를 ‘항공기 비상문’으로 정했어요. 이번에 항공기와 관련해서 큰 사고가 하나 있었죠? 비상구 좌석에 앉아있던 승객이 착륙 중이던 항공기의 비상 출입문을 강제로 개방한 것인데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는 아찔한 상황이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많은 의문이 드실 텐데요. ‘항공기 비상문이 대체 뭐길래 공중에서 열려?’가 가장 궁금하시겠죠. ‘항공기 비상문’이 뭔지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라노가 쉽게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지난달 26일 낮 12시45분, 제주공항에서 출발해 대구공항에 착륙하던 아시아나 항공기의 비상 출입문이 30대 남성 이 씨에 의해 강제 개방됐습니다. 213m 상공에서 벌어진 일이었죠. 다친 승객은 없었으나 탑승객 194명은 항공기가 착륙해서 정지할 때까지 약 8분간 극도의 공포에 떨어야 했습니다. 이 씨는 비상문을 연 직후 비상문 옆 벽면에 매달린 채로 있다가 승무원과 탑승객에 의해 제압됐습니다. 그는 경찰에 긴급 체포된 후 진술을 거부하다 “실직 후 스트레스를 받았다”며 “답답해 빨리 내리고 싶었다”고 진술했습니다.

‘항공기 비상문’은 비상시 항공기에서 탈출하기 쉽도록 만들어 놓은 문입니다. 건물에 있는 비상구와 같은 개념인데요. 우리가 보통 항공기에 탑승할 때 출입하는 문이 아닌, 날개 뒤편에 있는 다른 문입니다. 이 씨는 창가 쪽 비상구 좌석에 앉아 있다 비상문 레버를 당겨 문을 연 것입니다. 승무원과 다른 승객이 말릴 새도 없었죠.

이 사건이 일어나기 전까지 비상 출입문 쪽 좌석은 이코노미석 중 가장 넓기 때문에 좋은 자리로 여겨졌습니다. ‘비행기 꿀팁’으로 비상구 좌석을 예매하라는 조언은 빠지지 않을 정도였습니다. 다른 좌석보다 넓다는 이유로 웃돈을 얹어 판매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사건 이후 아시아나항공은 비상구 앞자리 판매를 중단했습니다. 에어서울 역시 비상구 자리를 판매하지 않기로 결정했고, 에어부산은 판매 여부를 고심하고 있습니다. 진에어 등은 비상구 옆자리 판매 정책을 변경하고자 논의하고 있죠.

‘비행기 문이 저렇게 쉽게 열려도 되나’ 싶으실 수도 있을 텐데요. ‘비상구’이기 때문에 누구나 쉽게 열 수 있는 것입니다. 비행기에 문제가 생겨 비상 착륙했을 때 누구라도 쉽게 열어 승객이 빨리 탈출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 문은 비상 ‘착륙’ 했을 때 사용하는 문인데요. 상공에서 비상문이 열려 문제가 됐습니다.

보통 항공기가 높은 고도에서 비행 중일 때는 비상문을 열 수 없습니다. 항공기가 상승할 때마다 주위 대기압이 줄어 순항고도에 이를 때는 지상의 26%까지 낮아진다고 합니다. 항공기 내부는 여압 시스템 덕분에 승객들이 기압 차를 크게 느끼지 못합니다. 항공기 내부는 지상과 비슷하게 유지하지만, 항공기 외부는 기압이 낮아 대기압 차로 인한 압력으로 문을 열 수 없게 되죠.

하지만 출발 직후나 착륙 직전처럼 외부 기압이 지상과 비슷할 때는 문 개방이 가능합니다. 최신 항공기나 대형 항공기 등 다른 기종의 항공기에는 이를 대비한 ‘비상구 자동 잠금장치’라는 안전장치가 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 사고가 난 항공기에는 별도의 안전장치가 없었죠.

비상구 앞 좌석은 비상시 승무원과 협력해 승객들을 최우선적으로 탈출시키는 임무를 맡습니다. 이번 사고에서 승무원들이 이 씨를 제대로 교육했는지, 탈출을 도우기에 적합한 사람이라고 제대로 판단했는지 등은 경찰이 조사해야 할 부분입니다. 외국 항공사들은 외국인이 비상구 좌석에 앉을 때 언어소통이 원활하게 되는지 확인하고 협력 의사나 과정이 어렵다고 판단하면 판매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몇몇 항공사가 비상구 좌석을 판매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비상시 승무원을 도와 탈출을 도울 누군가는 있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