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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도를 든 백골단. 국제신문DB |
백골단은 1980~1990년대 폭력적으로 민주화 운동 시위대를 진압한 사복 경찰 부대를 일컫는 말입니다. 신분은 경찰이지만 정복이 아니라 주로 청재킷에 청바지를 입고 흰색 헬멧을 착용했는데요. 백골단이라는 이름은 그들이 쓰고 있던 흰색 헬멧에서 비롯됐습니다. 이들은 민주화를 요구하는 학생과 시민을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연행했죠. 이 때문에 백골단은 ‘군사 독재정권의 산물’ ‘민주화 운동 탄압의 대표적인 예시’ ‘국가 폭력의 상징’이 됐습니다.
백골단의 시초는 이승만 정부 시절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6·25 발발 일주일 전 제2대 국회는 여소야대였습니다. 1950년 5월 치러진 총선에서는 무소속이 전체 의석의 3분의 2를 차지했죠. 간선제를 통한 당선이 어려워진 이 전 대통령은 국민 직선제 개헌안으로 위기를 돌파하려 합니다. 자유당은 백골단을 조직해 관제 데모를 사주하는데요. 이 전 대통령은 이를 구실로 비상계엄을 선포했고, 개헌안을 통과시켜 재집권에 성공합니다.
그로부터 30여 년이 지난 1980년대, 백골단이 부활합니다. 전두환 정권 때 특별경비부서 요원 경찰 채용 시험을 시작으로 다시 조직된 백골단은 무술 유단자와 특전사 출신으로 구성됐죠. 이들은 일반 전투경찰과 달리 시위대에 뛰어들어 체포하는 전술을 사용했고, 마구잡이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악명 높았습니다. 특히 시위대의 기를 죽이고 겁을 주기 위해 피투성이가 될 때까지 길거리에서 사람을 때려 질질 끌고 가기도 했죠.
그들은 사람의 생명을 빼앗기도 했습니다. 1991년 명지대생 강경대를 쇠 파이프로 구타해 숨지게 했고, 같은 해 성균관대생 김귀정 또한 백골단의 강제 진압에 목숨을 잃었습니다. 1996년 연세대생 노수석도 백골단의 시위대 토끼몰이 진압 과정에서 희생됐죠. 의문사한 한진중공업 박창수 노조위원장 빈소에서 주검을 탈취하기까지 합니다.
한쪽에서는 응원봉을 흔들고, 깃발을 들어 올리며 축제같이 활기차고 평화적인 시위 문화를 만들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한쪽에서는 민주화 탄압의 상징인 백골단을 소환했죠. 그들이 이런 이름을 고수하는 이유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