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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부산 사하구 은항교회에서 부경보건고등학교와 병설 부경중학교 졸업식이 열려 만학도 졸업생들이 송사를 들으며 눈물을 닦고 있다. 이원준 기자 windstorm@kookje.co.kr |
A(69) 씨 얘기부터 해볼게요. 4년 전 집안 사정으로 경남 진주 아들 집으로 옮겼습니다. A 씨의 배움은 짧았습니다. 가난한 부모는 A 씨를 학교에 보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결심했죠. 아들 집에 살기 시작한 때부터 4년 동안 진주와 부산을 오가며 중고교 과정을 모두 마쳤습니다. 왕복 3시간 넘는 거리를 매일 시외버스를 타고 다녔습니다. 대단한 열정입니다. 다음 달엔 동의과학대 한방약재과에 입학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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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부산 부경보건고등학교와 병설 부경중학교 졸업식에서 한 만학도 졸업생이 가족들에게 축하 꽃다발을 받고 있다. 이원준 기자 |
B 씨는 어머니 병간호와 학업을 병행합니다. 만성신부전 등으로 투병하는 어머니는 일주일에 세 번 병원 치료를 받아야 했습니다. 이런 어머니를 극진히 돌봤습니다. 소량으로 식사하는 어머니에게 하루 8끼를 챙겨드리며 공부했죠. 쉽잖은 상황에도 2년 개근을 눈앞에 둔 B 씨. 그러나 졸업을 얼마 남기지 않고 어머니에게 긴급한 일이 생기면서 결석했고, 안타깝게 개근을 놓쳤다네요. 그래도 어떻습니까. 충분히 빛나는걸요. B 씨는 신라대 미래융합학과로 진학합니다.
C(87) 씨는 6·25전쟁 때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다니던 학교도 불탔죠. 학업을 중단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때문에 어른이 돼서도 글을 제대로 읽지 못해 불편한 게 한둘이 아니었다네요. 2년 전 지인의 권유로 늦은 나이에 중학교에 입학했지만, 시련은 또 찾아옵니다. 갑작스러운 교통사고를 당한 거죠. 그만 포기하려 했습니다. 그 순간 용기를 북돋워준 건 병문안 온 선생님과 ‘흰머리 학우들’. 이들의 격려에 다시 힘을 냈습니다. 이제 아흔을 바라보는 C 씨. 그도 당당하게 중학교를 졸업하고 내년엔 고등학생이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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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일 부경보건고등학교와 부경중학교 졸업식에서 만학도 졸업생이 가족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이원준 기자 |
이들이 누구입니까. 평생을 억척같이 살았고, 가족을 위해 희생한 분들입니다. 그러다 보니 정작 스스로를 보듬고, 자기 삶에 투자하는 데 인색했습니다. 비록 이제야 본인을 위해 ‘욕심’을 내기 시작했지만, 늦지 않았습니다. 그 가치 있는 길을 응원합니다. 열정이 충분히 빛날 겁니다. 졸업을 축하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