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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봉권의 문화현장 <17> ‘올해의 문화인물’ 생각

조각가를 앗아간 적폐, 유족이 밝혔으니 예술인이 해결해야
디지털뉴스부 inews@kookje.co.kr | 2017.10.09 18:50
- 성추행 음모에 희생된 조각가
- 묻힐 뻔한 진실을 유족이 들췄고
- 나쁜 관행 바로잡을 길도 열었다
- 예술계 발전을 위한 ‘진짜 싸움’
- 결국 예술인이 풀어야할 과제

한가위 연휴에 올해의 노벨문학상을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63)가 받았다는 소식을 접하고 생각은 두 갈래 물길로 흘러갔다.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에 관한 호기심이 일면서 그의 소설을 읽고 싶다는 생각이 든 것이 한 갈래였다. 알고 보니, 제임스 아이버리 감독의 1993년 영화 ‘남아 있는 나날’의 원작 소설이 이시구로의 작품이었다.
고 손현욱 조각가가 남긴 작품 ‘Connection’(왼쪽)과 ‘배변의 기술’ 시리즈. 국제신문 DB
오래전 이 영화를 봤다. 지금 와선, 배우 엠마 톰슨이 보여준 놀랍도록 생기 넘치는 인간의 모습과 앤서니 홉킨스가 증명한 무시무시한 ‘연기의 중심’만 잔상으로 남아 있을 뿐이지만 이런 생각의 잔물결도 있었던 것 같다. ‘이 영화의 바탕에는 참 깊고 좋은 이야기가 있다’.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의 수상을 축하한다.

다른 한 갈래 생각의 물길은 ‘부산에서 올해의 문화인물을 꼽는다면, 누구일까’ 하는 물음이었다. 10월 첫 주, 노벨상 수상자 발표 물결이 지나가고 나면 지역 문화계에서도 한 해를 결산하는 각종 문화상과 예술상 발표가 이어진다. 만약 국제신문 문화부가 올해의 부산 문화인물을 선정한다면 유력한 후보는 누구일까 하는 생각이 그래서 자연스럽게 들었다.

연휴의 여유를 즐겨보겠다고 나선 산책길에 부산박물관을 둘러보고, 천마산 조각공원에 올라서서 조각 작품들에 눈인사를 건네는 순간 퍼뜩 올해의 문화인물이 마음속으로 정해져버렸다. 조각가 고 손현욱의 유족이다.

손현욱 조각가는 지난해 34세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났다. 경찰에 따르면, 스스로 투신해 사망했다. 그는 20대이던 2007년 첫 개인전을 연 뒤로 개인전을 10번 했고, 단체전에 184회 참여했으며, 100여 점 작품을 남겼다. 얼마나 뜨거운 열정으로 ‘오직 예술’의 삶을 살았는지 이런 기록이 말해준다. 젊고 유망하고 뜨거웠던 손 조각가를 죽음으로 몰고 간 건 추악하다는 말로밖에는 표현할 길이 없는 사건과 음모였다.(본지 지난 3월 24일 자 10면 보도 등) 손현욱 조각가가 교수로 재직한 동아대 미술학과에서 지난해 3월 소속 모 교수에 의한 학생 성추행 사건이 일어났고, 그 혐의와 책임을 손 조각가에게 범행 당사자 등이 덮어씌우려던 과정에서 온갖 음모와 거짓, 갑질이 횡행했으며, 무고했고 신망이 있었고 유망했던 손 조각가가 그 와중에 희생되어버린 것이 사건의 얼개다.

이 사건은 그 전말이 제대로 밝혀지지 못 할 뻔했다. 범행을 저질렀고, 또한 덮으려한 쪽은 ‘힘이 셌고’, 수사와 감사를 담당한 쪽에서 보기에는 일견 막막한 점도 있었다. 묻힐 뻔한 진실을 밝히는 데 결정적 구실을 한 이들이 바로 손 조각가의 유족이다. 무엇보다 손 조각가의 결백을 믿었고, 관련자들을 어렵게 찾아다니며 직접 증거와 증언을 확보했으며, 경찰에 이를 전달하면서 진실 규명을 거듭 촉구했다. 유족의 ‘직접 노력’이 없었다면, 이 일은 어떻게 되어갔을까?

유족의 노력은 단지 형사사건의 진상을 밝히는 데 크나큰 힘을 보탰다는 데 그치지 않는다. 문화예술 관점에서 보아도 뜻깊고 큰 일을 해냈다. 언뜻 근사하고 우아해 보이는 문화예술계 안에 정말이지 이것밖에 안 되는 구조와 사람이 여전히, 엄연히 있음을 드러냈다. 잘못된 구조와 나쁜 관행을 고치고, 예술계가 한 단계라도 발전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준 큰 업적이다. 예술계 안에서는 좀체 일어나지 않고, 일어나도 성과를 내기 힘든 이런 일을 평범했던 유족이 해냈다. 올해의 문화인물로 모자람이 없다. 다만, 유족이 남긴 예술계의 적폐 구조 제거와 발전의 과제가 예술인들 스스로 풀 과제로 남았음은 직시해야 한다.

유족은 최근 손 조각가의 죽음 등을 통해 알게 된 부산비엔날레 운영의 문제점을 경찰에 고발하고, 이를 공론의 장으로 끄집어내면서 또 한 번 진정한 예술 발전을 위한 싸움을 하고 있다.(본지 지난달 25일 자 8면 보도 등) 손현욱 조각가는 그 모습을 보고 있을 것이다.

문화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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