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하(Varaha) 신 돋을새김(인도 비디사 우다야기리 석굴 소재). 멧돼지 머리에 사람 몸을 가진 비슈누 신의 화신 바라하는 저팔계의 원형이지 싶다.

猪突豨勇(저돌희용)은 '앞뒤 재지 않고 함부로 날뛴다'는 뜻. 猪突豨勇은 사실 한나라를 빼앗은 王莽(왕망)이 만든 군대 이름에서 나왔다. 漢書(한서)는 이렇게 말한다. '흉노의 노략질이 심해지자 왕망은 천하의 죄수와 노예를 대대적으로 모으고 저돌희용이라 이름 붙였다 匈奴侵寇甚(흉노침구심) 莽大募天下囚徒人奴(망대모천하수도인노) 名曰猪突豨勇(명왈저돌희용)'. 죄수나 노예가 무슨 의욕이 있겠는가? 목숨을 담보로 자유를 사기 위해서였다.

猪突豨勇이 있기 전부터 猪突은 이미 있던 말. 멧돼지가 달려드는 꼴을 가리킨다. 흔히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드는 꼴을 보고 '저돌적'이라는 것도 여기서 나왔다. 猪突猛進(저돌맹진)은 멧돼지가 사납게 달려드는 꼴을 일컫는 말. 猛進이라고만 써놓아도 猪突을 감춘 것으로 읽는다. 멧돼지가 사납게 달려들면 결과는 둘 중 하나이다. 상대가 다치거나 상대에게 죽임을 당하거나. 猛進이라면 상대가 다치는 경우가 많겠지만 도리어 상대에게 죽임을 당한다면 멧돼지는 盲進(맹진)한 꼴이 된다.

흔히 집돼지를 가리켜 豚(돼지 돈)이라고 한다. 豚은 肉(고기 육)과 豕(돼지 시)로 구성된 글자. 豕 자는 본디 주둥이가 길고 어깨가 우람한 멧돼지의 꼴을 그린 상형문자이다. 본디 사나운 猛獸(맹수)이던 일부 멧돼지가 한낱 고깃덩어리로 轉落(전락)하고 만 것은 8000년 쯤 전의 일이다. 호랑이 없는 골에 토끼가 왕이라고, 馴化(순화)를 거부한 멧돼지 후예들이 捕食者(포식자)가 사라진 우리 주변에 猛獸로 돌아왔다. 사람이라도 다치면 虎患(호환) 대신 猪患(저환)이란 말이 생기지 싶은 때이다.

경성대 중어중문학과 초빙외래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