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민주·국민의당 진보적통 격전지
- "국민 중시하는 대통령 나와야"
- 민주 文 대세론-대안론 각축전
- 국민의당 경선 압승 안철수 주목

- 정치혐오증·묻지마 투표 경계
- 5·18 관련 언행따라 지지율 요동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가 지난 20일 1980년 5·18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헬기 사격을 한 전일빌딩 내 총탄 자국을 살펴보고 있다. 국제신문 DB

광주로 대표되는 '호남 민심'은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구 야권 세력에게는 '시대의 명령'이다.

'호남의 선택'은 곧 '진보 적통'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한다. 이 때문에 5·9대선 승리를 위한 진보 진영 잠룡들의 호남 구애는 치열하다. 특히 광주는 호남 민심을 잡기 위한 민주당 문재인 전 대표·안희정 충남지사·이재명 성남시장,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손학규 전 국민주권개혁회의 의장 등 구 야권 잠룡들이 벌이는 호남 쟁탈전의 최대 격전지다. 하지만 '광주의 선택'은 아직 오리무중이다. 지난 25일 국민의당 안 전 대표가 당내 광주 전남 제주 경선에서 압승했고, 27일 사실상 민주당 대선 후보를 결정지을 호남 경선이 이곳에서 열리지만 시민들은 "좀 더 지켜보자"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하지만 물밑에서는 '문재인 대세론'과 '대안론'이 치열하게 부딪히는 여론도 감지됐다.

■ 정권교체 확고…후보는 '글쎄'

자유한국당 홍준표 경남지사가 지난 21일 전북 부안 새만금홍보관을 방문해 새만금 위성사진을 가리키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국제신문 DB

민주당 경선 하루 전인 26일 광주에서 만난 시민들은 한결같이 "정권이 교체돼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광주 금난로와 송정시장, 5·18민주화 묘역에서 만난 시민들은 "광주에서 정권 교체는 바뀔 수 없는 명제"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하지만 '누구를 통해 정권 교체를 이룰 것이냐'는 불분명했다. KTX광주송정역에서 만난 신용국(34) 씨는 "이번 대선 때 꼭 투표할 것"이라면서도 "아직 마음에 두고 있는 후보는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다음 대통령은 국민을 중시하는 대통령, 편 가르기를 하지 않는 대통령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바람도 나타냈다. 아이들과 함께 나들이하려고 역을 찾은 한 여성은 "아직 지지하는 후보가 없다"고 말했다. 한 60대 여성도 "별로 관심이 없다. 그 자리(대통령)만 가면 다들 이상해지는 것 같다"고 정치 혐오증을 나타내기도 했다.

국민의당 안철수 전 대표가 지난 25일 광주 김대중컨벤션센터에서 열린 광주 전남 제주권역 국민경선 연설회에서 지지자의 응원을 받고 있다. 국제신문 DB

송정동 1913시장에서 만난 상인이나 시민들도 아직 선거에 대한 관심이 덜했다. 이곳은 1913년에 문을 열어 1913시장이라고 불린다. 100년이 넘게 시민들이 호흡해온 장소인 만큼 광주를 찾는 정치인들의 단골 방문지이기도 하다. 이곳에서 만난 김봉주(76·광주 광산구) 씨는 "전라도도 좀 바뀌어야 한다"고 쓴소리를 했다. 진보 진영 후보라고 해서 더는 '묻지 마 투표'를 하면 안 된다는 이야기다. 김 씨는 "전라도에서는 김대중 전 대통령 때부터 항상 전폭적으로 지지하고, 노무현 전 대통령 당시 아마 전라도에서 90% 이상 밀어줬던 것 같다. 그런데 좋아진 게 없다"며 "이제는 혁신적인 사람, 과감한 정치를 하는 사람이 나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대세론 대 대안론 '팽팽'

지난 5일 조선대에서 열린 바른정당 광주시당·전남도당 창당대회에 참석한 유승민 의원이 두 손으로 하트 모양을 만들며 인사하고 있다. 국제신문 DB

대체로 아직 선거에 무관심한 듯했지만, 5·18항쟁의 자취를 따라가면서 만난 시민들은 적극적으로 정치적 견해를 내놓았다. 광주와 전남 담양의 경계선쯤에 자리 잡은 광주 망월동 5·18민주화 묘역에는 휴일 참배객이 드문드문 이어졌다.

정로이(23·광주 광산구) 씨는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 나온 후보 중에서 그나마 가장 깨끗하고 맑은 사람인 것 같다"고 지지 이유를 밝혔다. 자신의 의사 표현을 꺼린 한 참배객도 "목포나 전남에서는 문재인이라고 한다"며 '문재인 대세론'을 언급하기도 했다.

전날 국민의당 전남 경선에서 압승한 국민의당 안 전 대표에 대한 관심도 역시 상당했다. 한 택시기사는 "문 전 대표는 내려앉는 분위기다. 우리 택시 기사들은 국민의당을 많이 지지한다"며 신나게 설명했다. 또 그는 "이제 머리가 하얗게 센 사람이 대통령을 하면 안 되고, 젊은 사람이 해야 한다. 녹슨 머리로 뭘 하겠나"라고 덧붙였다.

'대안론'을 이야기하는 시민도 적지 않았다. 특히 시민들은 이재명 성남시장에 대해 자주 언급했다. 직장 동료들과 5·18묘역을 찾은 최은정(25·광주 남구) 씨는 "원래 정치에 관심이 없었다. 후보들이 말하는 것을 들어보니 이재명 후보가 약간 똑 부러지고 젊은 사람들을 잘 이끌 것 같다"고 호감을 표시했다. 그러면서 "안철수 후보는 뭔가 힘이 떨어지는 것 같고, 문재인 후보는 착한 척하는 것 같다. 웃기만 하고…"라며 후보들을 평가했다.

광주지역 최고 번화가인 금남로에서는 좀 더 직접적으로 '광주 민심'과 마주했다. 5·18 당시 헬기 기총 사격 탄흔이 확인된 전일빌딩과 시민들의 최후 진지였던 옛 전남도청 건물은 그날의 현장에 있는 듯한 착각에 빠지게 했다. 이곳에는 도청 건물 보존을 요구하는 5·18 유족들이 농성 중이었다. 문 전 대표는 지난 19일 토론회에서 '전두환 표창장' 발언을 한 뒤 이곳을 찾았다가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5·18민주유공자유족회 정춘식 회장은 "지금은 광주 민심을 알 길이 없다. 문재인 후보가 유력하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며 "각 당에서 후보가 정해지면 그때 가서야 광주의 민심이 어디로 향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광주=박태우 기자 ya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