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재인 후보 공약 실천 땐
- 3년 뒤 연간 47조 원 지출 증가
- 다른 후보도 크게 다르지 않아

- 비수도권 경제 활성화 공약
- 아예 없거나 원론에 그쳐

"성장이 전제되지 않은 재정 투입은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와 같다."

성장과 분배(재정 투입·지출)는 한 나라의 경제를 움직이는 가장 중요한 토대다. 성장 전략이 배제된 재정 지출은 단기 처방에 머물고, 예산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제대로 된 성장 전략을 세울 수 없다. 19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한 주요 후보들이 이를 모를 까닭이 없다. 막대한 재원이 필요하다는 것도 안다. 그런데도 앞다퉈 재정 지출 확대를 외친다. 이는 유례없이 짧은 '장미 대선' 기간과 맞물려 최대한 많은 표를 얻으려는 행보와 무관하지 않다는 분석이다.

	부산 나들이객 상대로 열띤 유세전- 휴일인 23일 대선 후보들의 각 선거 캠프는 봄 나들이에 나선 시민들을 대상으로 치열한 유세전을 펼쳤다.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 선거운동원들이 부산시민공원에서(왼쪽 사진), 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선거운동원들은 부산어린이대공원에서 유세를 하고 있다. 서정빈 기자 photobin@kookje.co.kr

■ 2020년 예산 46조 원 추가해야

23일 다수의 경제 전문가는 원내 5당 대선 후보들이 내세운 '재정 지출 확대' 공약에 대해 "저성장이 고착화된 상황에서 재정 지출을 늘릴 여력이 많지 않다는 점을 고려해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또 미래 세대에 부담을 전가하거나 국가 부채가 더 늘어날 수 있는 만큼 '재정 투입'보다 '재정 건전성'에 무게를 둬야한다고 강조했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확정치)은 2015년과 지난해 각각 2.6%와 2.7%로 저성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이 지난 18일 제시한 올해 전망치도 2.6%였다.

동의대 김성태(경영학과) 교수는 "각 후보가 성장률 제고 방안과 경쟁력 향상을 위한 구조 개혁 등 저성장 기조를 해결하려는 중장기 공약 마련에 미흡한 것은 처음으로 치러지는 '5월 대선'의 특수성과 촉박한 선거 일정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후보들의 공약을 검증하는 사회적 시스템이 부족한 것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분석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재정을 어떻게 마련할 것인지에 대한 후보별 방안도 대부분 모호하거나 부족하다. 예컨대 후보들 중 유일하게 재정 지출 증가율을 구체적 수치(연평균 7%)로 제시한 더불어민주당 문재인 후보의 경우 2020년에는 지금보다 46조 원에 달하는 예산이 더 필요할 것으로 전망했다. 기획재정부가 확정한 올해 국가 예산은 역대 최대 규모인 400조5000억 원이다. 이를 토대로 예산이 해마다 7.0% 늘어난다고 가정하면 '2018년 428조5350억 원→2019년 458조5324억 원→2020년 490조6296억 원'으로 급증하게 된다.

이는 2017년 현재 기재부의 재정 지출 증가율(3.5%)을 대입해 계산한 2020년 추산 예산(444조414억 원)보다 46조5882억 원 많은 것이다. 또 최근 1년간 공공부문(일반 정부+비금융공기업) 부채 증가액(46조2000억 원, 2015년 말 957조3000억 원→지난해 말 1003조5000억 원)보다 많다. 다른 후보들도 구체적인 수치를 내놓지 않았을 뿐 예산 증가는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 '지역 경제 활성화' 태부족

현재 월 최대 20만 원인 기초연금을 30만 원으로 늘리겠다는 후보들의 복지 공약도 재원 마련 방안이 불투명하다는 논란으로 이어지고 있다. 재정 당국은 65세 이상 노인(소득 하위 70%)에 대한 기초연금 규모를 이같이 늘릴 경우 올해 10조6000억 원인 관련 예산이 당장 내년에는 4조~8조 원 더 필요할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후보들의 공약집을 보면 재원 조달 방안은 ▷일반회계 예산 조정(문 후보) ▷유사·중복사업 조정(자유한국당 홍준표 후보) ▷재정 지출 합리화 및 세출 조정(국민의당 안철수 후보) 등 구체적이지 않다. 그렇다고 증세와 관련해 명확한 방향이나 계획을 밝히지도 않고 있다. 오히려 돈을 누가 더 많이 쓰느냐는 경쟁에 빠져 있다. '포퓰리즘 공약'이라는 비판이 확산되는 이유다.

비수도권 경제 활성화에 초점을 맞춘 공약을 찾아보기 힘든 것도 문제점으로 지적된다. 10대 공약을 각각 제시한 후보 5명 중 공약집에 '지역경제 활성화'를 제목 형태로 명문화한 후보는 홍 후보가 유일했다. 그러나 홍 후보 역시 '지역의 내수 활성화' 등 원론적 차원에서만 정책의 지향점을 제시했을 뿐 구체적인 방안을 밝히지는 않았다.

이는 각 후보가 우리 경제의 구조적인 문제 해법을 내놓지 않은 것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다. 가령 조선·해운업 등 위기에 빠진 동남권 중후장대 산업의 경우 구조 개혁과 중장기 회생 방안 등 마스터플랜 수립이 당면 과제로 꼽히지만, 공약의 초점이 '재정 지출'에 맞춰지다 보니 사실상 '무대책'인 상황이 지속되고 있다는 것이다. 부산상공회의소 관계자는 "지역균형 발전에 대한 후보들의 관심이 부족하다. 지역 경제와 취약업종 활성화에 대한 비전을 제시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주요 후보 재정 정책 현황

·문재인(더불어민주당)

현행 3.5%인 재정지출 증가율을 연평균 7%로 확대. 취임 즉시 10조 원대 추경 편성

·홍준표(자유한국당)

재정지출 확대를 통한 내수 활성화. 저출산 해결·청년 복지에 재정투입 우선 순위 부여

·안철수(국민의당)

민간 주도형 재정 역할 확대. 재정지출 효율성 증대

·유승민(바른정당)

한국판 양적 완화 검토. 저출산 해결에 재정투입 우선 순위 부여

·심상정(정의당)

연기금(국민연금·공무원연금 등)의 사회투자 확대. 재정사업 지출 개혁으로 가용 재원 확대

이석주 기자 sereno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