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해자 중심 접근 외교 감안

- 협상 사실 인정하되 이행 제동

- 대일 요구보다 국내 치유 초점

‘파기하지는 않지만, 그대로 이행하지도 않겠다’. 정부가 9일 발표한 ‘한일 위안부 합의’ 처리 방향의 핵심 내용이다. 정부가 강조해온 피해자 중심 접근이라는 ‘원칙’과 한일 관계를 동시에 고려한 ‘절충안’으로 평가된다. 하지만 일본이 강하게 반발해 한일 관계의 또 다른 변수가 될 것으로 예상된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이날 일본에 재협상을 요구하지 않겠다고 밝히면서 ▷일본 정부의 책임 인정 ▷아베 신조 총리의 사죄와 반성 표명 ▷피해자 명예와 존엄 회복 ▷상처 치유 등을 위한 일본 정부 예산 10억 엔 출연 ▷최종적·불가역적 해결 등을 담은 위안부 합의는 일단 파기되지 않고 남게 됐다.

하지만 강 장관은 “위안부 피해자들의 명예·존엄 회복 및 마음의 상처 치유를 위해 우리 정부가 해야 할 일을 해나가는 데 모든 노력을 다해 나가겠다”며 한일 위안부 합의에 구속되지 않겠다는 입장도 분명히 했다. 동시에 일본 정부가 출연한 기금 10억 엔의 우리 정부 예산 충당 등 피해자들과 우리 국민이 제기한 문제의식에 대한 정부 차원의 조치들을 강조했다. 대일 요구보다는 합의에 따른 국내적 ‘상처’를 치유하는 쪽에 초점을 맞춘 것으로 볼 수 있다.

외교부 당국자는 일본이 출연한 10억 엔 전액을 정부 예산으로 충당하기로 한 데 대해 “그만큼의 돈은 일단 (정부 예산으로) 마련해 두겠다는 것까지가 현재 상황이다. 어떻게 할지에 대해서는 일본 측과 기본적으로 협의한다는 전제 아래 향후 구체적으로 세부 사항을 검토할 것”이라고 말했다. 일본의 출연금 중 화해·치유재단에서 피해자 및 유족에 대한 현금 지급 사업을 벌이고 남은 한화 60억 원 이상의 기금 처리 방향에 대해서도 “그 돈은 일단 그대로 있는 것이다. 어떻게 할지는 피해자들이나 관련 단체, 국민 의견을 수렴해 어떤 방안이 합리적이며 피해자를 위한 것이고, 피해자 중심 접근 원칙에 맞는 것인지 검토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가 합의 파기나 재협상 선언 대신 절충안을 택한 것은 한일 관계에 미칠 파장과 일본이 재협상에 응하지 않겠다고 천명한 상황 등을 고려한 것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한일 관계가 다시 냉각될 가능성이 제기된다. 고노 다로 일본 외무상은 우리 정부의 발표에 대해 “한일 합의는 국가와 국가의 약속이다. 정권이 바뀌었다고 해서 (합의를) 실현하지 않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된다. 이는 국제적이고 보편적인 원칙”이라고 반발했다. 일본의 대응은 아베 총리의 평창동계올림픽 계기 방한 여부를 통해 투영될 가능성도 있다. 

 박태우 기자 yain@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