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대통령과 이명박 전 대통령. 연합뉴스

“나는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이다.” 지난 18일 “분노의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했던 문재인 대통령의 공식 입장에 대해 정치권은 이렇게 해석하는 모양새다.

앞서 이명박 전 대통령은 검찰의 국정원 특수활동비 수사에 대해 성명서를 통해 정치 보복이라고 비판했다.

지난 16일 서울중앙지법은 이명박 정부 시절 국가정보원으로부터 불법자금을 받은 혐의로 김백준 전 청와대 총무기획관과 김진모 전 청와대 민정2비서관에 대한 구속영장을 전격 발부했다.

핵심 측근들이 잇따라 구속되자 이 전 대통령 측이 “적폐청산이라는 이름으로 진행되는 검찰 수사에 많은 국민이 보수 궤멸을 겨냥한 정치공작이자 노무현 전 대통령 죽음에 대한 정치보복으로 보고 있다”며 반발한 것이다.

이에 청와대는 “이 전 대통령이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을 거론하며 정치보복을 운운한 것에 대해 분노의 마음을 감출 수 없다”고 이례적으로 강도 높게 비판했다.

이어 “청와대가 정치 보복을 위해 검찰을 움직인 것처럼 표현하는 것은 우리 정부에 대한 모욕이자 사법질서에 대한 부정이며, 정치 근본에서 벗어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이를 두고 정치권에서는 흡사 영화 ‘역린’을 보는 듯했다고 평가했다.

역린은 용의 목에 거꾸로 난 비늘을 의미한다. 군주가 노여워하는 군주만의 약점 또는 노여움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같은 제목의 영화 역린은 사도세자의 아들인 정조 임금 암살 사건을 둘러싼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조는 즉위 직후 “짐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라고 공식적으로 발표한 뒤 “과거 자신의 아버지를 부정했던 모든 것을 바꿔나갔다.

정치권에서는 “정조 임금의 개혁이 현 정부의 적폐청산과 유사하다”며 “분노를 금할 수 없다는 말 역시 그 연장선에서 봐야 한다”고 해석했다.

청와대가 밝힌 분노의 이유가 노무현 전 대통령을 운운한 것인 만큼 이 정부가 노무현 정부를 계승했음을 공식적으로 인정한 말이라는 거다.

한 정치 평론가는 “대통령 스스로 본인이 노무현 대통령의 비서실장 출신, 노무현 정권의 계승자라고 자인한 것이나 다름없다”며 “앞으로 현 정부는 과거 노무현 정권이 했던 많은 일들을 계승할 것”이라고 관측했다.

이런 맥락에서 일각에서는 현재의 적폐청산 움직임 역시 노무현 정부 때 시행됐던 과거사 청산의 의미로 해석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이와 관련해 김성태 자유한국당 원내대표는 원내대책회의에서 “문 대통령이 냉정과 이성이 아닌 분노의 감정을 앞세우면 그것이 바로 정치보복이 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홍준표 대표는 “노무현 비서실장 같은 말씀”이라고 꼬집었다.

반면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과거 노무현 정부가 과거사 청산 작업을 할 때는 반대가 많았다. 이 때문에 정치보복 논란이 있어도 먹혔다”며 “이번 정부는 국민의 다수 지지를 업고 탄생했다. 그런 만큼 이번 적폐청산이 다수 국민의 지지를 받는 상황에서 쉽게 정치보복 프레임이 갇히지 않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 다른 평론가는 "노무현 대통령의 지난 8주기 추모식에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하며 추모식 참여는 이번 정권에서 마지막이 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며 "청와대 발표를 두고 현 정권을 노 정권의 계승으로 단순 도식하는 것은 무리가 있다"고 말했다. "차라리 이번 청와대 발표는 인간적인 분노에 가깝다"는 게 이 평론가의 해석이다. 이승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