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트럼프, 한국 방위비 증액 요구
- 문 대통령 “공평하게 분담해야”
- 예상됐던 지소미아 언급 생략
- 北 비핵화 ‘새 방법론’ 논의 없어
- 대북 제재 계속 유지에는 한뜻
23일(이하 현지시간) 미국 뉴욕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서는 우려했던 대로 방위비 분담금 증액·군사장비 구매 등을 골자로 하는 ‘트럼프 청구서’가 제시됐다. 애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압박 카드로 내밀 것으로 예상됐던 한일 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 지소미아) 폐기 문제에 관한 언급은 없었다. 이번 회담에 앞서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했던 북미 간 비핵화 대화를 추동하기 위한 ‘새로운 방법론’도 논의되지 않았다. 앞으로 북미 협상 과정에서 풀어야 할 과제로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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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문재인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3일 오후(현지시간) 미국 뉴욕 인터콘티넨탈호텔에서 정상회담을 하는 동안 한국 측 배석자가 자리에 앉아 있다. 왼쪽부터 조윤제 주미대사, 김상조 청와대 정책실장, 정의용 국가안보실장,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강경화 외교부 장관. 연합뉴스 |
■방위비 압박에 무기구매 계획 밝혀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오후 뉴욕 인터콘티넨털 호텔에서 열린 한미 정상회담에 참석해 모두발언을 하면서 “한국은 미국의 가장 큰 군사장비 구매국 중 하나이고, 우리는 매우 잘 협력하고 있다”고 한국을 치켜세웠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 같은 발언은 한국에 미국 무기 추가 구매를 공개적으로 주문한 것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트럼프 대통령은 비공개 회담에서는 방위비 분담금(SMA)의 증액을 요구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과 미국은 한국시간으로 24일 오전 10시부터 서울 모처에서 2020년 이후부터 적용할 제11차 SMA를 체결하기 위한 첫 협의에 들어갔다. 문재인 대통령은 “합리적 수준의 공평한 분담”을 강조했다고 청와대 관계자는 전했다. 문 대통령은 국방예산 및 미국산 무기 구매와 분담금의 꾸준한 증가로 한미 동맹과 주한미군의 안정적 주둔에 기여한 점을 상세히 설명하는 한편 지난 10년간 한국 정부의 무기 구매 현황과 향후 3년간 무기 구매 계획도 밝혔다. 이는 트럼프 대통령이 요구한 방위비 분담금을 증액할 수는 없다는 입장을 우회적으로 피력한 것으로 해석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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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미국 측 배석자 모습. 왼쪽부터 폼페이오 국무부 장관, 스티븐 므누신 재무부 장관, 월버 로스 상무부 장관, 스티븐 비건 국무부 대북특별대표, 믹 멀베이니 비서실장 대행, 로버트 오브라이언 국가안보보좌관. 연합뉴스 |
국방기술품질원이 지난 1월 발간한 ‘세계 방산시장 연감’의 ‘미국 2008~2017년 무기 수출 현황’을 보면 미국은 10년간 한국에 67억3100만 달러(7조6000억여 원)어치의 무기를 판매했다. 한국에 도입된 완성품 기준인데, 이는 올해 우리 국방 예산인 46조 원의 16% 수준이다. 문 대통령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한국의 미국산 무기 구매 규모와 함께 향후 3년간 구매 계획을 설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구체적으로는 오는 2022년께로 예상되는 전시작전통제권 환수를 위한 선행 조치로 한국군의 핵심능력 구비 차원에서 도입할 전력이 포함될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다. 전작권 전환을 위해서는 정찰자산과 장거리 정밀유도무기, 탄도미사일 감시 및 요격체계, 수중에서의 적 잠수함 탐지체계 등의 전력 보완이 시급하다는 게 군 당국의 입장이다.
이날 지소미아 문제는 거론되지 않았지만 문 대통령은 미국의 ‘액화천연가스(LNG) 추가 수입’과 ‘자율주행 합작법인 투자’라는 경제협력을 언급하며 한미 동맹을 강화할 계기로 삼겠다는 뜻을 천명했다. 지소미아 종료 결정에 미국이 노골적으로 반대 의사를 표명하는 등 한미동맹 균열 논란이 불거진 상황에서 양국 간 경협 확대로 동맹을 강화하겠다는 복안으로 풀이된다.
■비핵화 ‘새로운 방법론’ 논의 없어
한미 정상은 조만간 열리게 될 북미 간 실무협상에서 비핵화 대화의 실질적 진전을 끌어내기 위한 구체적 방안을 놓고 의견을 교환한 것으로 전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언급했던 ‘새로운 방법론’에 관한 대화은 없었다. 앞서 트럼프 대통령은 북한 비핵화 로드맵과 관련해 ‘리비아 모델(선 핵폐기, 후 보상)’을 비판하며 “어쩌면 새로운 방법이 매우 좋을지도 모른다”고 밝힌 바 있어 한미 정상회담에서 새로운 방법론이 구체적으로 논의될 가능성에도 관심이 쏠렸다.
금강산 관광 재개와 개성공단 재가동 문제도 이날 회담 테이블에 오르지 않았다. 이들 의제는 비핵화와 관련해 구체적인 진전이 있어야만 가능한 만큼 이번 회담의 의제에서는 제외된 것으로 보인다. 다만, 양 정상은 대북 제재가 유지돼야 한다는 데 의견을 같이했다. 또 6·12 싱가포르 북미 합의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확인하며 북한을 상대로 무력을 사용하지 않겠다는 약속을 재확인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최근 북한의 단거리 미사일 발사 등 저강도 도발과 관련해 “문 대통령과 논의할 것”이라면서도 “많은 국가가 미사일을 보유하고 있다”고 말해 단거리 미사일 발사 의미를 축소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3차 북미 정상회담이 열리기 위해 무엇이 요구되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글쎄, 지켜보자”며 “지금 사람들은 그것(3차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지길 보고 싶어 할 것”이라고 말했다. 또 “나는 그것으로부터 무엇이 나오게 될지 알기를 원한다. 우리는 정상회담이 개최되기 전에 많은 것을 알 수 있다”고 밝혀 실무협상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9번째로 열린 한미 정상회담은 이날 오후 5시30분부터 6시35분까지 1시간5분 동안 진행됐다. 두 정상의 모두발언이 끝난 뒤 4분간 기자들과 17차례 문답을 주고받는 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혼자 답변을 독식하는 장면이 연출됐다. 문 대통령이 답변할 기회는 전혀 없었다.
김태경 기자 tgkim@kookje.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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