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행과 금융감독원이 흥미로운 조사 결과를 최근 발표했습니다. 2012년부터 2년마다 실시하는 '전국민 금융이해력 조사'입니다.

금융을 이해한다는 걸 어떻게 측정할 수 있을까요. 이 조사는 ▷대출이자·인플레이션 등의 개념을 정확히 알고 있는지 보는 금융지식 ▷적극적으로 저축하는지, 물건을 사기 전에 지급능력을 확인하는지 등을 묻는 금융행위 ▷저축보다 소비를 선호하는지 등을 체크하는 금융태도 세 가지 분야로 나눠 보는 방식을 택했습니다.

우리나라의 금융이해력은 OECD 17개국 중 9위였습니다. 20대 청년층과 70대 노년층은 최소목표점수(66.7점)에 미달한 비중이 60%를 넘었습니다. 특히 20대는 금융지식·행위·태도 등 모든 측정영역에서 목표점수에 미달했습니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은 대학생, 취업준비생, 사회초년생 등 금융이해력이 낮은 새내기 금융소비자 대상 교육, 고령화 사회에 은퇴 대비 생애주기별 교육을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내놨습니다.

부문별로 보면 금융태도 점수가 다른 두 항목과 달리 평균보다 낮아 전체 이해력 순위를 낮췄습니다. 저축보다 소비를, 미래보다 현재를 선호한다는 답변 비율이 높아 미래에 대한 대비가 취약하다는 평가를 받은 겁니다.

일견 '일단 쓰고 보자'라는 태도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최근 유행하는 '탕진잼'이라는 말을 떠올리면 마냥 지출을 탓하기만도 어렵습니다. 이 신조어는 '탕진하다'와 '재미'의 줄임말인데, 가격이 싼 생활용품이나 화장품, 문구 등을 잔뜩 사면서 만족감을 느끼는 젊은 층의 새로운 소비 트렌드를 일컫습니다. 사상 최대 실업률, 가계부채, 경기 불황이란 뉴스가 횡행하며 미래가 불확실한 시대에 자족(自足)적 혹은 자조(自嘲)적 소비에 빠진 청년의 모습. 마냥 금융이해력이 낮다고 지적할 수만은 없는 일일 겁니다.

금융지식에서는 주식시장에서 여러 종류의 주식에 분산투자함으로써 투자위험을 감소시킨다는 문항의 정답률이 80.9%로 최상위를 기록해 눈길을 끌었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인 저축활동과 관련된 원리금, 복리이자, 대출이자 계산 등에 관한 경제적 지식은 다른 나라에 비해 이해가 부족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금융행위의 경우 '가계예산 보유', '저축활동'은 양호했지만 '평소 재무상황 점검', '카드대금 등의 납부기일 준수', '물품구입 전 대금 지급능력 확인' 등 건전한 소비생활에 필요한 금융행위 항목에서 크게 미흡한 것으로 조사됐습니다.

하나 더 주의할 대목이 있습니다. 스스로 금융지식이 '높다'고 평가한 이들의 지식수준이 실제로는 '보통'으로 평가한 이들과 비슷했다는 결과입니다. OECD는 이를 스스로를 과대평가하는 경향이라고 분석하고, 이렇게 자신의 금융지식을 과신해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 모든 결정을 할 수 있다고 믿는 경우 금융사기에 빠질 위험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박지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