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억 원 연봉에다 주택 등 제공
- 中·日업체 파격적 조건에 '흔들'
- 동남아서 직접 사업체 열기도

A(53) 씨는 국내 한 대형 조선소에서 특수 선박 설계 업무를 맡아 근무하다 작년 말 직장을 잃었다. A 씨를 비롯해 10명가량이 근무하던 설계 부서는 지난해 절반으로 인원을 감축하고 남은 인력에 대해서도 연봉을 절반으로 깎더니, 급기야 조직 자체가 사라지고 말았다. A 씨 역시 직장을 잃고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온 뒤 별다른 직업을 구하지 못하고 있다. 그런데 국내 조선업계에서는 A 씨와 같은 핵심 기술인력을 국내에 붙들어 둘 뾰족한 묘안이 없다 보니 이들이 중국 일본 등 조선업 경쟁국뿐 아니라 베트남 필리핀 등 동남아 지역으로까지 유출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울산 하늘에서 본 현대중공업, 현대미포조선. 연합뉴스

5일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에 따르면 지난해 국내 11대 조선소(현대 대우조선 삼성 현대삼호 현대미포 성동 한진 대선 STX 대한 SPP) 인력 현황은 16만6277명이다. 2015년 대비 18.3% 줄어든 것으로, 3만7236명이 지난해 조선소를 떠났다.

특히 연구 인력과 10년 이상 경력을 가진 차장~부장급 핵심 기술 인력이 포함된 사무기술직 인력은 6688명이 감소했다. 업계는 이 가운데 핵심 인력은 20%(1377명) 안팎을 차지할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문제는 핵심기술 인력이 시장으로 대거 쏟아짐에 따라 일본과 중국에 국내 핵심 기술이 유출될 것이라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는 점이다. 업계 관계자는 "중국은 수억 원의 연봉과 주택 지원책까지 마련하며 스카우트전을 벌이고 있다"며 "최근 국내 조선업 불경기와 맞물려 벌어지는 현상"이라고 밝혔다.

정부는 지난해 말 급히 추경예산 199억6000만 원을 배정해 조선 퇴직인력 재취업 사업을 전개하고 있다. 이 사업을 맡은 중소조선연구원은 올해 1월까지 402명의 재취업을 성사시키는 한편, 핵심 기술인력을 보유한 114명을 대상으로 기술 자문단을 구성해 중소기업 기술 컨설팅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고 있다. 하지만 조선소 일감 자체가 사라진 데다, 핵심 기술인력은 고액의 연봉을 받았던 터라 이들의 구미를 당길 수 있는 정책을 만들 수는 없는 상황이다. 중소조선연구원 김성환 원장은 "고급 기술을 보유한 기술 자문단은 현재 재능기부 방식으로 자신의 기술력을 활용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업계에서는 특히 근래 들어 조선업에 관심을 보이는 동남아 국가로 떠나는 핵심 기술인력들도 있다고 파악하고 있다. 국내 조선업계 한 전문가는 "아직 소수이긴 하지만 베트남이나 필리핀으로 자신의 사업체를 꾸려 나가거나 조선업체에 스카우트되는 사례도 있다"며 "일감이 없어 떠나는 사람들에 대한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민건태 기자 fastmkt@kookje.co.kr

◇ 국내 11대 조선소 인력감소 추이 2015년 20만3513명 2016년 16만6277명 총 3만7236명(18.3%) 감소 ※자료 : 한국조선해양플랜트협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