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파트너십 강조 창업투자사
- 지역 스타트업 25개사에 투자
- 정부주도 펀드·지원과는 달리
- 장기적인 안목 투자, 압박 덜해
- 노하우 전수로 시너지 효과도

부산의 대표적인 창업투자사인 라이트하우스 컴바인인베스트먼트 최영찬(39) 대표를 지난 14일 부산 해운대구 본사에서 만났다. 최 대표는 초기 단계 스타트업에 투자하는 액셀러레이터사인 선보엔젤파트너스도 이끌고 있다. 그가 두 곳을 이끌게 된 과정을 살펴보면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존 산업의 연결이란 키워드가 자리 잡고 있다. 여기에 그가 직접 창업을 한 경험과 아버지의 가르침이 잘 녹아있다.

	라이트하우스 컴바인인베스트먼트 최영찬 대표가 지난 14일 부산 해운대구 본사에서 지역 창업 생태계의 선순환을 강조하고 있다. 서순용 기자 seosy@kookje.co.kr

그의 아버지는 1986년 지역 조선해양기자재 업체 선보공업을 창업한 최금식(66) 회장이다. 최 대표는 부산 사하구의 10평 남짓 작은 공장에서 일하는 아버지의 모습을 보며 자랐다. 선보공업이 선박 모듈 생산이란 아이디어로 30여 년만에 지역 중견기업 반열에 오르는 영광도 함께 지켜봤다. 최 대표는 “당시 아버지가 작은 공장에 책상 2개, 전화기 3대를 두고 사업을 시작한 게 생생하게 기억난다”고 회상했다.

■ 아버지가 전수한 파트너십

최 대표가 기억하는 선보공업 초기의 상황은 어려움의 연속이었다. 주변에서 도와주는 투자사나 사람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최 대표는 “당시 상황에 대해 아버지도 안타까움을 느끼셨다. 아버지는 누군가 조금만 투자를 했어도 5~10년이란 세월을 앞당길 수 있었을 것이라 이야기하신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상황 속에서도 아버지는 ‘파트너십’이란 가치를 포기하지 않았다. 최 대표는 공장 직원의 이름을 일일이 다 외우는 아버지의 모습을 예로 들었다. 그는 “아버지는 어릴 때부터 나에게 파트너십을 강조했다. 아버지가 보여준 파트너십의 대표적인 예가 직원의 이름을 외우는 것이었다”면서 “아버지는 직원과의 동등한 위치에서 협업하는 게 회사 성장과 발전의 원동력이라 설명했다. 창업투자사를 운영하면서 가장 도움이 되는 가치이기도 하다”며 감사 인사를 보냈다.

그는 아버지의 파트너십과 더불어 대학 시절 몇 차례 창업 경험에서 배운 ‘공감’ 능력도 창업투자사 경영에 활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게 2011년 미국 위스콘신대 유학 시절 만든 휠체어 스타트업이다. 당시 휠체어는 몸이 앞으로 쏠린 상태에서 바퀴를 앞으로 굴려야 전진하는 구조로 설계돼 있었다. 이렇다 보니 휠체어 이용자가 앞으로 넘어지는 경우가 잦았다. 그는 바퀴를 뒤로 굴리면 전진하는 구조로 휠체어를 다시 만들었다. 휠체어 이용자의 불편함을 공감한 뒤 탄생한 그의 신선한 아이디어에 협업하자는 제안도 들어왔다. 최 대표는 “이런 사업을 해보니 사회적인 의미나 파장이 컸다. 직접 사업을 해보면서 체득한 다양한 경험이 창업투자사를 꾸리는 데 큰 도움이 되고 있다”고 이야기했다.

■ 스타트업과 산업의 만남

2013년 귀국한 그는 선보공업에서 신사업 등을 담당하는 사업기획팀에서 일했다. 조선업의 불황이 지속하는 상황에서 새로운 희망이 잘 보이지 않았다. 게다가 이미 기존 체제에 익숙한 선보공업을 움직이기는 불가능에 가까웠다. 최 대표는 2016년 2월 과감하게 새로운 먹거리를 찾는 액셀러레이터사 선보엔젤파트너스를 차렸다. 힘들게 창업을 시작해 중견기업을 만든 최 대표의 아버지도 흔쾌히 투자금의 절반 정도를 내놓았다.

이렇게 시작된 선보엔젤파트너스는 지금까지 총 27억여 원을 투입해 부산지역 스타트업 25개사에 투자를 마쳤다. 지금은 중소벤처기업부의 민간투자주도형 기술창업 지원사업인 ‘팁스’ 운영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그는 “정부 주도의 펀드 투자나 지원과는 다르다. 정부자금은 곧 회수해야 한다는 압박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보니 창업 생태계의 선순환 구조를 만들지 못한다”면서 “하지만 당장 돈을 회수하지 않아도 되는 민간 투자사는 여유를 가지고 장기적인 안목에서 투자할 수 있다. 우리는 수익이 나면 그때 또다시 투자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아이디어가 좋은 스타트업이 나와도 기존 산업과는 잘 연결되지 않았다. 기계, 자동차, 조선 등 기존 산업과 연결되지 않는 스타트업은 금세 사라졌다. 지역의 다른 중소·중견기업 경영 2, 3세들과도 비슷한 고민을 나눴다. 이런 의견이 모여 지난해 3월 지역 기업들이 연합해 출자한 라이트하우스 컴바인인베스트먼트가 결성됐다. 최 대표가 대표자리를 맡았다. 지역에 기반을 둔 중소·중견기업과 산업은행이 출자한 420억 원 규모의 펀드를 라이트하우스 컴바인인베스트먼트가 운용 중이다.

최 대표는 “라이트하우스 컴바인인베스트먼트에 출자한 회사의 평균 업력은 30년 이상이다. 노하우를 스타트업에 고스란히 전수해 줄 수 있다. 기존 산업과 만난 스타트업은 엄청난 시너지 효과를 만들어 낸다”고 말했다.

김진룡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