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상악화 땐 원격 조정 어렵고
- 환적화물 단시간에 처리 불가
- 하역 일자리도 88% 사라질 것
- 부산항 실정 고려 모델 개발해야”

해양수산부가 부산신항의 신규 터미널을 국내 최초의 무인 자동화 기반의 차세대 스마트항만으로 구축하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는 가운데 부산항운노조가 무인 자동화는 일자리를 없애고 생산성이 떨어져 환적화물이 많은 부산항의 실정과 맞지 않는다고 주장하고 나섰다.

지난 5일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열린 항만 무인자동화 관련 용역 보고회 모습.

부산항운노동조합은 지난 5일 부산항 국제여객터미널에서 ‘항만 4차산업혁명 시대 지능형 자동화터미널의 항만인력대응방안’ 연구 최종용역 보고회를 가졌다. 용역은 한국항만운송노동연구원이 맡아 지난해 11월 8일 착수보고회를 가진 데 이어 해외 항만현장 조사 등을 거쳐 이날 최종보고회를 열었다.

부산항운노동조합이 이 같은 용역을 실시한 것은 정부가 부산항 신항을 스마트항만으로 구축하고 있어 항운노조원 등 인력감축이 현실화할 우려가 크기 때문이다. 항만운송노동연구원은 부산항 신항에 무인자동화가 도입될 경우, 항만하역내에서 일하는 노동자 2205명 가운데 88.3%인 1949명이 일자리를 잃게 된다고 주장했다.

항만운송노동연구원은 앞서 무인 자동화 터미널을 도입한 중국, 싱가포르, 네덜란드, 미국과 한국의 항만 환경은 다르다고 분석했다. 중국은 항만의 성장 속도보다 숙련된 근로자가 부족한 데다 자국 항만장비업체의 세계시장 지배력을 확대하기 위해 이를 추진했고 사회주의 체제여서 갈등 조정이 상대적으로 쉽다. 싱가포르는 자국 내에 항만인력이 부족하고, 네덜란드는 인건비가 비싸고 근로자들의 결근이 잦은 등 인력운영이 어려워 항만무인화를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부산항은 숙련된 근로자 공급이 충분하고 인건비가 상대적으로 낮지만, 사회적 갈등 비용이 많이 든다고 설명했다. 무인 자동화에 반대하는 근로자들의 파업으로 하역이 중단되면 직접 피해만 하루 1200억 원, 간접피해까지 합치면 8800억 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됐다.

또 무인 자동화 터미널은 시스템 유지관리와 업데이트를 위해 정기적으로 몇 시간씩 운영을 중단해야 하고, 사이버 공격을 당하면 장기간 터미널이 마비될 수 있는 문제점도 있다고 지적했다. 기상 악화 때는 안벽 크레인의 원격조정이 어려워 터미널 운영 중단 사태가 벌어질 가능성도 크다는 문제점도 있다. 항만운송노동연구원이 조사한 무인 자동화 터미널의 시간당 컨테이너 처리량은 대체로 23~25개 정도에 불과했다. 부산항의 경우 한 선박에서 내려 다른 선박에 옮겨싣는 환적화물 비중이 50%를 넘는 데다 주말에 선박이 집중되는 여건상 단시간에 대량의 컨테이너를 신속하게 처리해야 하는데 생산성이 떨어지는 무인 자동화 시스템으로는 감당하기 어렵다는 뜻이다.

또 무인 자동화 터미널은 반자동 터미널보다 2배나 많은 인프라 구축비와 장비구매비, 3~5배의 IT 비용과 유지보수비가 들지만 생산성이 높지 않아 선사들이 이용을 꺼려 하역료를 덤핑할 수밖에 없고 결국 근로자들이 피해를 보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항만운송노동연구원은 노사정이 충분한 시간을 두고 논의해 공감대를 형성하고 부산항의 실정에 적합한 한국형 자동화 모델을 개발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이은정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