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극은 싸웠다고 해도 갈 곳이 없어요. 살벌하게 싸운 사람들이 다음 날 함께 밥을 먹어야 합니다. 탐사를 나가 바다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때 대원들에게 희생을 요구하는 만큼 리더는 협동심과 신뢰를 끌어내야 합니다. 이런 것이 남극의 리더십입니다.”

극지연구소 윤호일 소장이 3일 남극에서 경험한 극한의 환경에서의 리더십에 대해 강연하고 있다. 박수현기자

윤호일 극지연구소장은 3일 부산롯데호텔에서 열린 제16기 국제아카데미 5주차 강연에서 ‘극한의 리더십-우리는 우리를 이겼다’를 주제로 남극대륙 탐험대장으로서 세종기지를 20년 이끌어온 생생한 경험을 전달했다. 윤 소장은 리더가 갖춰야 할 덕목으로 ‘정직’‘균형감각’ ‘사람냄새’를 꼽았다.

“리더가 정직하지 않으면 조직원들은 그를 믿지 않아 위기 상황에서 그를 떠납니다. 또 진정한 리더는 다소 떨어지는 구성원들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여건과 계기를 마련해줘야 하고 구성원이 궁지에 몰렸을 때 끝까지 지켜줄 수 있는 ‘사람냄새’가 나야 합니다.”

이날 강연에서 윤 소장은 2003년 세종기지 설립이래 최악의 위기상황으로 꼽히는 조난사고에서 극적으로 구조된 강천윤 부대장과 2명의 대원 이야기를 통해 지도자가 갖춰야 할 리더십을 이해하기 쉽게 설명했다.

윤 소장은 “그들이 통상 한계시간으로 여겨지는 48시간을 넘어 52시간 만에 기적적으로 구조될 수 있었던 건 전적으로 강 부대장의 리더십 덕분”이라며 “그는 죽음의 공포에 떠는 대원들에게 계속 긍정과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또 “위기상황에서 리더들이 범하는 오류 중 하나는 근거 없는 낙관론으로 구성원을 설득하는 것인데 강 부대장은 조직원에게 남극에서 ‘눈보라는 최소 3일 가는 만큼 기본적으로 버텨야 한다’며 구체적인 사실로 동기 부여를 해 그들을 움직이게 했습니다.”

그는 이날 ‘미지의 땅’인 남극의 극환 환경과 미래가치에 대해서도 흥미롭게 설명했다. 윤 소장은 지난 20년 간 한국과 남극을 오가는 연구활동으로 국내 최고의 남극 전문가로 알려져 있다. 1989년 대한민국 남극하계연구 단장을 비롯해 극지연구소 극지환경연구부장기후변화연구부 부장, 선임연구본부장을 역임하고 현재 극지연구소 소장으로 있다. 이은정 기자 ej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