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시설 투자 최소 5000만 원 소요
- 도금 등 지역 뿌리산업 부담 가중
- 화학물질 시설자금 등 지원 호소

정부가 지난 17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에 따른 취급시설 정기검사 유예를 올해 말까지 3개월 추가 연장했지만, 산업 현장에서는 “여전히 촉박하다”는 목소리가 크다.

화관법은 유해화학물질을 다루는 기업의 안전관리 기준을 강화하기 위해 2015년 1월 개정됐다. 이후 5년의 유예기간을 부여한 뒤 올해 1월 전면 시행됐다. 문제는 기업이 지켜야 하는 안전 기준이 종전 79개에서 최대 300여개로 늘어났다는 점이다. 시설 확충과 취급자 교육 등에만 수 천만 원의 비용이 들어가면서 영세한 기업들은 시설 보강에 어려움을 겪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지난 4월 6개월간 정기검사 유예를 결정했지만 기간이 모두 끝나 다음달 1일부터 정기검사를 재개해야 할 상황이었다. 하지만 코로나19로 중소기업이 경영에 어려움을 겪자 정부는 올 연말까지 다시 3개월을 연장했다.

그럼에도 산업 현장에서는 화관법 정기검사 유예기간을 1년가량 연장해야 한다는 요구가 쏟아지고 있다. 또 시설 보강에 정부 차원의 지원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온다.

중소기업중앙회는 지난 11일까지 화관법 적용 대상 중소제조업 300개사를 대상으로 실시한 ‘화관법 취급시설 정기검사 유예기간 종료에 따른 실태조사’ 결과 10곳 중 8곳(80.3%)이 ‘정기검사 유예기간 연장이 필요하다’고 응답했다고 20일 밝혔다.

필요한 추가 유예기간으로는 ‘1년’(39%)이 가장 많았다. 당장 정기검사를 재개하면 검사를 받을 수 있는 곳도 절반인 51.7%에 머물렀다. 응답 업체는 설비투자 비용 부담(49.7%)과 대응 인력 부족(27.6%) 등을 이유로 꼽았다.

부산 사상구 한 도금업체 대표는 “화학약품 보관시설과 분진을 빨아들이는 집진시설, 외부 차단막 등 법률상 규제에 맞춰 시설을 갖추는데 최소 5000만 원 이상의 비용이 든다”면서 “코로나19 탓에 매출이 줄어 시설에 투자할 비용을 감당할 수 없는 상황이다. 최근 공장 가동률도 절반가량 떨어졌는데 어디서 돈을 구해야 할지 막막하다”고 토로했다.

화학물질을 다루는 도금, 표면처리, 패션칼라 등 지역 기업은 부담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높다. 화관법에 따르면 유해화학물질 취급사업장은 법이 정한 기준에 맞게 시설을 설치하고 매년 점검을 받아야 한다.

사업장이 검사 결과 부적합을 받으면 관할 환경청으로부터 행정처분을 받는다. 1차 행정개선명령 후 제대로 이행되지 않으면 가동중지명령까지 부과된다. 화관법의 적용을 받는 업체는 전국 1만7000개, 부산지역은 1000개 안팎이다. 지역 업계 관계자는 “조합 차원에서 만든 공동시설로 일부 업체는 부담을 덜 수도 있지만, 시설을 갖출 여유가 없는 영세업체가 더 많은 실정”이라며 “정부의 지원이 필요하다”고 전했다.

중기중앙회 부산울산본부 김병수 회장은 “코로나19로 기업 운영이 갈수록 어려워지는 상황에서 지역 뿌리산업이 존폐 위기를 맞고 있다. 많은 곳이 문을 닫거나 해외로 이전할 수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배지열 기자 heat89@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