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지난 7월 말 한미 관세협상에서 미국에 약속한 3500억 달러(약 490조 원) 규모의 대미 투자와 관련해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그것은 선불(up front)”이라고 못박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연합뉴스

●미국 입장 강경…“3500억 달러 먼저 내야”

26일 국내외 언론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5일(현지시간) 백악관에서 중국 동영상 플랫폼 틱톡 합의와 관련한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이같이 밝혔다.

그는 “우리는 다른 나라들로부터 결코 제대로 대우받지 못했지만, 이제는 잘하고 있다. 우리가 이토록 잘한 적은 없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관세와 무역 합의 덕분에 한 사례에서는 9500억 달러를 확보하게 됐는데, 이전에는 전혀 지불하지 않던 금액”이라며 “아시다시피 일본에서는 5500억 달러, 한국에서는 3500억 달러를 받는다. 이것은 선불”이라고 강조했다.

9500억 달러는 유럽연합(EU)의 사례를 거론한 것으로 보인다.

트럼프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한미 간 무역합의의 최대 쟁점인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를 놓고 양국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리는 상황에서 나왔다.

특히 3500억 달러를 ‘선불’로 거론한 것은 그것이 한국에 대한 관세 인하의 전제조건임을 강조한 것으로 보인다.

앞서 한미는 지난 7월 30일 타결한 무역 협상에서 미국이 한국에 부과하는 상호관세와 자동차 관세를 25%에서 15%로 낮추는 대신 한국은 3500억 달러 규모의 대미 투자 등을 시행하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대미 투자 패키지를 어떤 식으로 구성하고 이행하느냐를 두고 양측이 이견을 좁히지 못하고 있다.

한국은 지분 투자를 최소화하고 대부분을 보증으로 하려고 하지만, 미국은 지분 투자 방식으로 달러 현금을 한국에서 받아 투자처를 미국이 결정하고 투자 이익도 미국이 90%를 가져가는 등의 ‘일본식’ 합의를 요구하고 있다.

우리 정부는 미국의 요구대로 3500억 달러의 대미 투자금을 제공할 경우 한국이 상당한 외환 리스크를 지게 된다는 점에서 한미 간 통화스와프 체결을 요구 중이다.

통화스와프는 자국의 화폐를 상대국에 맡긴 뒤 미리 정한 환율로 상대국의 통화를 빌려오는 일종의 ‘국가 간 마이너스 통장’ 개념의 제도다.

●우리 정부도 이전보다 한층 ‘강경’…APEC 분수령

이재명 대통령을 비롯한 정부 당국자들도 이전보다 다소 강한 어조로 대응 의지를 밝히고 있다.

방미 중인 이 대통령을 수행하는 김용범 대통령실 정책실장은 지난 24일 뉴욕에서 “상업적 합리성에 맞고, 우리가 감내 가능하고 국익에 부합하며 상호 호혜적인 결과를 도출해야 한다는 원칙으로 협상 중”이라며 “시한 때문에 그런 원칙을 희생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대통령 역시 이번 방미 중 스콧 베센트 미국 재무부 장관을 만나 ‘상업적 합리성’ 보장과 한미 통화 스와프의 필요성 등 한국의 입장을 전달했다.

정부 안팎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의 방한이 예고된 다음 달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담까지의 시기가 협상의 중대 분수령이 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이와 관련해 여한구 산업통상자원부 통상교섭본부장은 지난 23일 아세안(ASEAN·동남아시아국가연합) 경제장관회의 참석과 제이미슨 그리어 미국무역대표부(USTR) 대표 면담을 위해 말레이시아로 출국하면서 “최대한 우리 기업의 입장을 반영할 수 있는 방향으로 (미국과의 후속 협의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트럼프 대통령의 ‘선불’ 발언으로 이날 서울 외환시장에서 미국 달러화 대비 원화 환율은 전날보다 8.4원 오른 1409.0원으로 출발한 뒤 장중 1412.1원까지 상승했다.

코스피지수는 이날 오전 11시 1분 기준으로 전장 대비 73.94포인트(2.13%) 내린 3397.17을 기록 중이다. 이석주 기자 serenom@kookje.co.kr·일부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