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검찰청이 11일 윤석열(53·사법연수원23기) 여주지청장(전 특별수사팀장)에 대한 징계 청구를 강행했다.

당초 논란이 됐던 '수사 외압' 의혹과 관련해 당사자 중 한 명인 조영곤 (55·〃16기) 서울중앙지검장은 징계에서 제외됐다.

국정원 수사 과정 내내 따라붙었던 법무부 개입 의혹, 수사기밀 유출 의혹은 아예 감찰 대상에도 오르지 못했다.

징계 청구를 위한 절차상 흠결도 노출됐다.

대검 감찰위원회가 윤 지청장의 징계와 조 지검장의 징계 제외를 결론짓지 못했음에도 불구하고 검찰은 '위원회 다수의견'을 근거로 징계 청구를 확정했다. '찍어내기' '짜맞추기' 감찰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보고누락에만 초점…외압·기밀유출은 조사 안해

길태기 검찰총장 직무대행은 지난달 22일 국정원 사건 추가수사 과정에서 빚어진 보고누락 논란 등에 대해 전격 감찰조사를 지시했다.

앞서 열린 서울중앙지검에 대한 법제사법위원회의 국정감사에서 윤 지청장이 국정원 수사과정에서 상부의 부당한 지시와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한 직후였다.

윤 지청장은 "국정원 직원 체포와 압수수색 필요성, 향후계획까지 보고서에 적어 조 검사장 집을 찾아가 보고했다. 검사장이 '야당 도와줄 일이 있느냐', '정 하려면 내가 사표를 내면 해라, 순수성을 의심 받는다'고 말했다"며 "국정원에 대한 수사 초기부터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했다.

윤 지청장은 특히 지난 9월 채동욱 전 검찰총장이 퇴임하고 난 후 대검에 보고를 올리면 대부분 법무부로 자동으로 넘어가 장관 재가를 받아 처리하는 분위기가 형성됐다며 '수사기밀' 유출 의혹도 있다고 주장했다.

실제 수사팀이 국정원 직원이 작성한 것으로 추정되는 5만5천689건의 트윗 글을추려내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공소장 변경 신청서에 포함시키자 윤상현 새누리당 수석부대표는 "2천233건만 직접적 증거로 제기됐지 나머지 건에 대해서는 국정원의 소행으로 추정한다는 것일 뿐 직접적 증거를 아직 밝혀내지 못하고 있다"고 언급한 바있다.

윤 부대표가 언급한 부분은 검찰 내부 관계자가 아니면 알 수 없는 내용으로 알려져 '수사기밀 유출' 의혹이 불거지기도 했다.

민주당 등 야당 측은 즉각 윤 지청장을 '찍어내기' 위한 감찰이 돼서는 안되며 '수사외압'과 '기밀유출'에 대해서도 철저한 감찰조사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길 총장 직무대행은 "일련의 사안에 대해 감찰을 지시한 것이지 특정 개인을 지정해서 한 것은 아니다"고 강조했다.

이준호 대검 감찰본부장 역시 "감찰 범위를 제한하거나 특정한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나 3주 간 철저한 비공개 속에 진행된 대검 감찰의 범위는 야당이 우려한 '시나리오'를 벗어나지 못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수사팀의 체포·압수수색 영장 청구와 집행, 공소장 변경 신청 등과 관련한 보고누락 및 지시불이행 부분에만 감찰의 초점이 맞춰진 것이다.

윤 지청장 등 수사팀이 주장한 수사외압과 기밀유출 부분에 대한 감찰은 아예 조사 대상에도 오르지 않았다.

조 지검장이 "야당 도와줄 일 있느냐고 말했다"는 윤 지청장 발언에 대해서 감찰본부는 "조 지검장과 윤 지청장의 진술이 달라 사실관계를 확인할 수 없었다"면서수사 외압으로 보기 어렵다고 판단했다.

법무부의 외압 의혹에 대해서는 "통상적인 의견 조율 과정을 외압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해명했다.

감찰본부는 실제 법무부에 대한 조사에 나섰는지를 묻자 "조사할 권한이 없다"며 사실상 감찰 대상이 아니었음을 시인했다.

여당 등 정치권에 수사기밀이 유출된 의혹과 관련해서도 "강제조사할 권한이 없다" "(유출을) 특정할 수 없는데 무작위로 찍어 (유출) 아니냐고 할 수 없다" "어느쪽으로 나갔는지 감이 안잡히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서면조사로 감찰 끝…감찰위원회 권고 과정도 불투명

이번 대검 감찰조사는 진행 과정은 물론 징계 여부 확정 절차에서도 통상적인 감찰과 달라 의구심을 자아내고 있다.

통상 검사 비리·비위가 접수되면 감찰본부는 경위파악→진술조사→사실조사→감찰조사 등 4단계 절차로 감찰을 진행한다.

이 과정에서 비리·비위 혐의를 받고 있는 검사는 물론 사건 관련자들을 직접 조사하는 것이 원칙이다.

'수사'가 아닌만큼 소환을 강제할 순 없지만 경위나 사실관계를 파악하기 위해 검사 외에 일반인이나 관련자들도 필요할 경우 본인 동의를 얻어 조사하는 경우가 많다.

대검 감찰본부는 그러나 국정원 수사라는 국가적으로 중대한 사안을 둘러싸고 벌어진 이번 사태를 규명하는데 서면조사로만 일관했다.

감찰본부는 "윤석열 지청장 등 관련자들을 상대로 서면으로 질의하고 답변서를 받는 형식으로 감찰을 진행했다"면서 "필요한 경우 유선으로 질의하고 답변을 듣기도 했다"고 밝혔다.

조 지검장과 윤 지청장의 진술이 엇갈리는데도 대면조사를 하지 않은 이유에 대해 감찰본부는 "실제 조사해도 별 차이가 없다. 그렇게까지 한다고 해서 실체가 밝혀질 사안이 아니다"는 궁색한 변명을 내놨다.

법무부에 윤 지청장 등에 대한 징계를 청구한 과정도 통상적인 감찰조사와 달랐다.

대검은 내부 감찰업무의 투명성 및 공정성 등을 심의하기 위해 외부인사 중심의감찰위원회를 운영하고 있다.

감찰위원회는 감찰본부의 조사 결과를 보고받고 징계 여부 및 수위의 적정성에 대해 결론을 낸 뒤 이를 검찰총장에게 '권고' 형식으로 전달한다.

대검 감찰위원회 운영규정 2조(위원회의 권한과 임무)는 '위원회는 주요 감찰사건의 조사결과 및 징계청구 등의 조치에 관한 사항을 심의해 그 결과를 검찰총장에게 제시하고 필요한 조치를 권고한다'고 규정돼 있다.

통상적으로 감찰위원회는 의견 일치를 이룬 뒤 이를 위원회 권고 의견으로 검찰총장에게 전달한다. 지금까지 위원회 권고를 검찰총장이 수용하지 않은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러나 이번 윤 지청장 등에 대한 징계를 논의하기 위해 열린 감찰위원회 전체회의에서는 윤 지청장에 대한 징계에 합의하거나 하나의 일치된 결론을 내리지 못한것으로 전해졌다.

위원들 간 의견이 엇갈리자 감찰위원회는 결국 각자 의견을 정리해 대검에 전달하는 형식으로 회의를 마무리했다.

감찰본부는 "위원회 과반수가 윤 지청장 등에 대한 정직 의견을 밝혔다"면서 마치 위원회가 의결된 권고안을 대검에 전달한 것처럼 설명했다.

그러나 위원회가 전례와 달리 통일된 의견에 이르지 못한 것 아니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그렇다"고 말해 이번 징계 청구가 검찰의 임의적인 판단에 따라 이뤄졌음을 사실상 인정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