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전이 업무시설인 오피스텔에 누진제가 적용되는 주택용 요금을 우선 적용하면서 '전기료 폭탄' 시비가 발생하고 있다. 사진은 해운대 일대 오피스텔과 아파트촌 야경. 국제신문 DB

- 2011년부터 일괄 주거용 간주
- 개별 입주자들에 고지 않아
- 공공재 관리 국내 최대 공기업이
- 국민 상대로 기망했다는 비난
- "우리도 피해자" 130명 넘어

한국전력공사가 업무용 오피스텔 입주민들에게 사실상 주거용 오피스텔에 적용하는 주택용 전기요금을 부과하는 '전기요금 폭탄'이 말썽이다. 한전은 업무용 오피스텔의 경우 이의 신청을 하면 요금제를 변경해줘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공공재인 전기를 관리하는 국가 최대 공기업이 국민을 상대로 마땅히 취해야 할 조치를 하지 않는 '부작위(不作爲)'를 하고 있다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지적이다.

■확산하는 피해

부산 부산진구 부전동 C오피스텔은 최근 '전기요금 폭탄' 시비로 들끓고 있다. 관리비오과금대책위원회를 주도하고 있는 양모(53) 씨는 지난 18개월 동안 248만 원만 내면 될 전기요금을 996만 원이나 냈다. 여행사를 운영하는 예모(62) 씨도 피해를 보기는 마찬가지. 예 씨는 지난해 4월부터 지난 1월까지 419만 원의 전기요금을 냈다. 일반용이 아니라 주택용 전기요금이 부과되면서 300만 원을 더 낸 것이다. 이 같은 사실을 알게 된 양 씨는 피해자가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오피스텔 입주자에게 피해 사례를 수집하고 있다. 사례 수집 일주일 만인 23일까지 130여 명이 "전기요금이 너무 과하게 나온 것 같다"고 신고했다.

이와 함께 지난해 12월 입주한 울산의 한 신축 오피스텔 입주자들도 업무용 오피스텔에 적용되는 '일반용' 전기를 사용하는 줄 알고 입주했다가 '전기요금 폭탄'을 맞기도 했다. 이 경우 주거용 오피스텔이어서 차이는 있지만 한전의 이중적 요금 잣대가 국민을 혼란하게 만든 것은 마찬가지다. 부산지역 한 변호사는 "한전의 태도는 요금 폭탄을 맞은 업무용 오피스텔 입주민에게는 '부작위에 의한 기망' 논란을 불러올 수 있다"며 "정부 차원의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업무시설에 웬 주택용 요금?

한전은 2011년 7월 이전 오피스텔을 업무시설로 분류한 건축법에 따라 업무용 시설에 부과되는 '일반용' 전기요금을 적용했다. 하지만 정부가 오피스텔을 주거용으로 사용하는 것을 막기 위해 2004~2006년 바닥 난방을 전면적으로 금지하자 정부 방침에 맞춰 2011년 7월 이후 오피스텔에 주택용 요금제를 적용했다. 요금제를 바꿔 달라는 업무용 오피스텔의 요구가 있을 때만 예외적으로 사업자등록증, 현장 확인 등을 거쳐 요금제를 변경해줬다. 한전 관계자는 "2011년 9월 대정전 사태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당시에 전력량이 급증하고 있어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며 "오피스텔도 주거시설이므로 업무용에 적용되는 '일반용' 요금을 적용하는 것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아파트 입주자들의 지적도 한몫했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과도한 전기요금이다. 주택용 요금제의 누진제는 100㎾ 단위로 요율이 약 100%씩 올라가므로 주택용 요금과 일반용 요금의 차이는 상당하다. 주택용 요금제는 처음 100㎾까지는 ㎾당 60.7원에 불과하지만, 다음 100㎾까지는 125.9원이 적용되고, 이후 100㎾를 사용할 때마다 187.9원, 280.6원, 417.7원이 단계적으로 적용된다. 만약 500㎾를 초과해 사용하면 ㎾당 709.5원의 요금을 납부해야한다. 전력 소비량이 많은 업무용 오피스텔이 복잡한 요금제를 잘 알지 못하는 경우 생각지도 못한 '전기요금 폭탄'을 맞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전형적인 편의주의적 발상

피해자들과 시민단체들은 한전의 편의주의적 발상에 대해 강력히 비판했다. 오문범 부산YMCA 기획실장은 "국가 공기업인 한전이 건축법상 명백히 업무시설인 오피스텔을 주관적인 잣대로 주거용으로 판단한 뒤 3, 4배에 달하는 전기요금을 부과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며 "적절한 보상은 물론 시스템 개혁까지 이뤄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특히 한전이 많은 돈을 걷기에 편리한 방식을 추구하면서 오피스텔을 용도에 맞게 사용하는지를 확인하는 의무를 소비자인 국민에게 떠넘긴 것은 명백한 '갑질'이자 '꼼수'라는 것이다. 오 실장은 "새로운 제도에 대해 이용자들에게 충분히 고지하지 않아 피해자를 양산한 것은 거대 공기업이 기본도리를 다하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며 "편의주의적 발상을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부산경제정의실천연합 이훈전 사무처장은 "한전이 법의 테두리를 벗어나 업무용 오피스텔에 주택용 요금을 부과한 것은 잘못"이라며 "이미 4년간 제도가 시행돼 원점으로 돌리기 어렵다면 개별적으로는 스티커나 안내문으로 알리고, 관리사무실 등에도 정책 홍보를 강화해야 한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