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9일 부산 금정구 청룡동 야산에 멧돼지를 포획하기 위한 트랩이 설치돼 있고, 등산객의 접근을 금지하는 안내문이 걸려 있다. 지난 26일 강서구에서 사살된 멧돼지(사진 오른쪽 위)와 지난 28일 사하구 감천동에 출몰한 개. 박호걸 안세희 기자·부산 강서경찰서 공단파출소 제공

- "배추 쑥대밭 돼 겨우 7포기 건져"
- 부산외대 뒷산공사로 서식지 이동
- 포획 트랩·사냥개 동원해도 한계

- 감천항 외국인선원이 버린 큰 개
- 구평동에 자꾸 나타나 행인 위협

부산 강서구 공단지역에 바다를 헤엄쳐온 멧돼지떼가 출몰해 한바탕 소동(본지 지난 28일 자 5면 보도)이 벌어진 가운데 금정구와 사하구 등 시 외곽지역을 중심으로 밤이면 멧돼지와 개떼가 자주 나타나 주민들이 불안해하고 있다.

■청룡동 주민 위협하는 멧돼지

"멧돼지가 밭을 다 헤집어 놓는 바람에 무밭은 아예 못쓰게 됐고 배추도 80포기 중 7포기만 겨우 건졌어요. 50년째 농사를 지었지만 멧돼지가 나타난 건 처음이에요."

금정구 청룡동에서 농사를 짓는 문영식(여·73) 씨는 지난 9월 갑자기 나타난 멧돼지 때문에 밤잠을 설치기 일쑤다. 그는 "매일 밤 11시부터 2시간씩 밭을 지켜도 소용이 없다. 몸집이 큰 멧돼지와 마주쳤다가 놀라 쓰러진 적도 있다"고 하소연했다.

금정구 청룡동 일대가 갑자기 나타난 멧돼지로 쑥대밭이 되고 있다. 29일 금정구에 따르면 지난 9월부터 금정구청에 신고된 이 지역 멧돼지 출몰 건수는 7건으로, 청룡동에 멧돼지가 나타난 것은 처음이다.

이에 따라 금정구는 멧돼지 포획 트랩을 설치한 데 이어 매주 사냥개를 동원해 짖게 하는 등 대책을 내놨지만, 상황은 나아지지 않고 있다. 이 지역은 인근에 아파트가 있어 멧돼지가 나타나도 총을 쏠 수 없다.

전문가들은 멧돼지가 나타난 원인으로 부산외국어대 뒷산 산책로 공사를 꼽고 있다. 시는 지난 8월 폭우로 유실된 부산외대 뒷산 불광사 산책로 복구공사를 하고 있는데, 이 공사로 말미암아 서식지가 좁아진 멧돼지 무리가 범어사와 청룡동으로 이동한 것으로 파악된다. 금정구 관계자는 "피해가 계속되면 경찰의 협조를 받아 공포탄으로 멧돼지를 쫓을 수도 있다"고 말했다. 시에 따르면 부산지역 멧돼지 출몰 건수는 2013년 64건에서 지난해 21건으로 줄었으나, 올해 금정구 등 3곳에서 58건이 신고돼 다시 늘어나는 추세다.

■구평동 밤길 위협하는 개

"가뜩이나 밤이면 인적도 드문데 송아지만 한 개들이 돌아다니니 무섭죠."

사하구 구평동 주민들이 밤마다 출몰하는 떠돌이 개로 인해 밤길을 위협받고 있다. 취재진이 지난 28일 오후 8시 해당 지역을 돌아본 결과, 부둣길에 세워진 대형 화물차 사이로 무리를 지어 다니는 개떼를 자주 발견할 수 있었다. 진돗개로 보이는 개는 성인 남성의 허리 높이 정도의 크기여서 주민들은 갑자기 튀어나온 개떼에 깜짝 놀라 도망가기도 했다.

주민들은 떠돌이 개떼가 감천항에서 온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조선소에서 일하는 이모(50) 씨는 "감천항 근처 수산물 취급 공장에서 창고로 몰려드는 쥐나 고양이를 쫓기 위해 큰 개를 많이 키우는데 밤에는 풀어놔서 일대에 돌아다니고 있다"고 말했다.

이 동네 토박이로 식당을 운영하는 박모(54) 씨는 "주인 없는 개가 돌아다니며 번식을 많이 했고, 공장에서 키우는 개도 밤이 되면 주변 동네로 나오는 것 같다"고 거들었다.

감천항에 머무는 러시아 선원들이 풀어놓은 개라는 추측도 있다. 경찰 관계자는 "러시아 선원들이 배 안에서 개를 많이 키우는데, 검역 문제로 한때 '개를 풀어놓지 말라'는 안내판을 붙여놓기도 했지만 소용없다. 보통 정박하면 몇 달간 지내 그동안 개들이 도망치는 경우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 지역을 순찰하는 사하경찰서 감천지구대 측은 "주민들이 위협을 느끼는 만큼 구청과 협의해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