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남권 신공항 건설 사업이 또다시 무산된 가운데 울산 울주군에 신고리 원자력발전소 5·6호기 건설 허가(본지 25일 자 1·4면 보도)가 결정되면서 지역에서는 "신공항 달라고 했더니 안전을 위협하는 원전만 안긴다"는 불만이 들끓고 있다. 또 안전성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은 채 인구밀집 지역에 4년6개월 만에 신규 원전 2기가 건립되는 것에 대해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탈핵부산시민연대 관계자들이 24일 부산시청 앞에서 신고리5·6호기 건설승인 철회를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김성효 기자 kimsh@kookje.co.kr

24일 정부와 시민사회에 따르면 원자력안전위원회의 지난 23일 신고리5·6호기 허가는 지난달 26일 첫 논의가 이뤄진 후 3번째 회의 만에 나왔다. 산업통상자원부가 고준위 방사능폐기물처리장 등을 건설할 때 지역주민의 동의를 얻겠다고 발표한 지 한 달이 채 되지 않은 시점이었다.

특히 정부가 '동남권 신공항' 건설이라는 지역주민의 염원을 묵살하고 '동남권 신공항=김해공항 확장'이라는 논리로 여론을 호도하는 시점에 맞춰 신고리 원전 추가 건설을 발표해 그동안 수도권을 중심으로 흘러나온 '신공항+혐오시설'이라는 패키지론이 현실화됐다는 비난 여론이 거세게 일고 있다.

신공항 무산에 앞서 수도권 언론사들은 '지역이기주의에 나라가 흔들린다'며 앞다퉈 보도했다. 신공항 유치를 놓고 핌피(PIMFY·수익성이 있는 사업을 내 지방에 유치하겠다는 지역이기주의) 현상으로 매도하며 "신공항을 유치하는 지역에는 원전 등 혐오시설을 동시에 넣어야 한다"는 이른바 '신공항+혐오시설 패키지론'을 주장했다. 결국 수도권 언론들이 여론을 조성하고 정부가 부산 울산 경남 주민들이 신공항 건립 무산으로 정신이 없는 틈을 활용했다는 의혹을 받을 수밖에 없다. 수도권에는 원전이 없으면서도 한국 전체 전력의 38%를 소비하고 원자력 혐오시설은 부울경에 몰아넣고 있다는 비난이 나오는 이유다.

원안위의 이번 결정으로 2022년이 되면 부산 기장군과 울산 울주군 서생면 일대에는 국내 원전 총 30호기 가운데 10기가 들어선 세계 최대의 원전 밀집지역이 된다. 전 세계 원전부지 188곳 중 6기 이상의 원전이 밀집된 지역은 6%에 불과하다. 앞으로 부산·울산·창원 등 인구밀집 지역과 가까운 곳에 원전 시설이 몰려 이들 원전에서 동시다발적으로 고장이 난다면 수많은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는 등 사상 최악의 사고가 발생할 수 있다.

한국수력원자력은 이번 원전 인허가 과정에서 안전성 평가를 제대로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원전 전문가들에 따르면 한수원은 개별 원전 안전성 평가는 했지만, 다수 호기 밀집지역에서 사고 발생 시 원전 간의 영향에 대해서는 평가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한수원은 "각 원전이 공유하는 시설이 없고 사고 예방 조처가 충분하다"고 맞서고 있다. 하지만 태풍 등 동일한 외부 요인으로 여러 기의 원전이 정지됐던 사례가 있어 정밀한 검토 작업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지적한다.

정옥재 기자 littleprinc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