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수·점수제로 보완 요구 목소리
- 부산시 "패스제 유지 방침"

'서병수표 인사 실험'이 도입 반년 만에 존폐 논란에 휩싸이는 등 공무원 사회의 저항에 부딪히고 있다. 부산시는 지난달 세 번째로 실시한 간부 역량평가에서 3급 승진대상자(4급) 32명 중 26명(81%)이, 4급 승진대상자의 경우 63명 중 48명(76%)이 합격했다고 18일 밝혔다.

최근 공무원 사회에서 이슈로 부상한 역량평가는 행정업무에서 발생할 수 있는 특정 상황에 관한 상황판단 능력과 정책기획 등을 평가하고, 민원인 대응 등 실제로 상황극까지 벌여 간부로서의 종합 자질을 검증하는 방식이다.

4·5급 간부는 역량평가를 통과해야만 승진 자격을 얻는 '패스(pass)제'여서 일부 간부는 사설학원에서 하루 65만 원을 주고 고액 과외를 받는 등 부작용(본지 지난달 9일 자 8면 보도)이 속출한 데다 평소 근무평가가 좋은 간부가 예상 밖으로 탈락하는 등 불만이 터져 나와 제도를 폐지하거나 보완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역량평가 점수를 승진에 일정 비율로 반영하거나 과정을 이수하면 승진 자격을 주자는 의견이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부산시에 앞서 역량평가를 시행한 서울시는 패스제가 아닌 점수제로 제도를 변경했고, 경기도는 제도 시행을 폐지했다.

실제 시 내부에서는 "올해 안으로 패스제에서 이수제나 점수제로 바뀐다"는 소문이 공공연하게 나돌고 있다. A 서기관(4급)은 "6급에서 5급으로 승진하는 초임 간부에게는 필요한 평가라고 생각한다"면서도 "5급 이상 간부의 역량은 직속 상사인 해당 실·국·본부장이나 부시장이 제일 잘 안다. 굳이 1인당 130만 원의 평가 비용을 써가며 이런 제도를 시행할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시는 패스제를 계속 유지한다는 방침이다. 이수제나 점수제를 도입하면 이 제도의 도입 취지가 훼손될 수 있어서다. 이수제는 역량평가를 받기만 하면 승진 자격이 주어지기 때문에 평가 대상자의 도덕적 해이가 발생할 가능성이 크다. 점수제 역시 일정 부분 승진 평가에 반영할 수 있지만, 역량평가 결과가 승진을 좌우할 만큼 가중치를 주지 않을 경우 효과를 거두기는 어렵다는 지적이다.

베이비붐 세대(1955~1963년생)의 대량 퇴직과 맞물려 2020년까지 시의 5급 이상 간부 공무원 10명 중 7명이 퇴직하는 상황에서 적절한 검증 없이 간부들의 승진이 이어질 경우, 행정의 질이 저하될 우려가 커서 역량평가를 통해 자질이 부족한 간부를 걸러내야 한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시 조유장 인사담당관은 "제도 시행 초기여서 다소 부작용이 있을 수는 있지만, 보완을 통해 반드시 시행해야 할 인사 제도"라며 "간부들이 일방적인 소통 방식의 과거 행정으로는 현재 복잡다단한 행정 상황에 유연하게 대처할 수 없다"고 말했다.

윤정길 기자 yjke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