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구, 기념관 예산 20억 확보 못해
- 이전보상비로 직접 해결해야

부산 영도의 명물 '중리 해녀촌'이 정비 사업으로 사라질 상황에 놓였다. 담당 구는 해녀촌을 없애고 '해녀 기념관'을 만들 계획이지만 사업비를 확보하지 못해 이마저도 불투명하다.

29일 철거가 예정된 부산 영도구 동삼동 중리 해변 해녀촌 전경. 백한기 선임기자 baekhk@kookje.co.kr

부산 영도구는 동삼동 중리지구 연안을 정비하면서 해녀촌 일대를 철거한다고 29일 밝혔다. 연안정비사업은 태풍으로 침수 피해가 잦은 중리지구(2400㎡) 일대에 총사업비 42억9000만 원을 들여 방파제를 설치하고 해안 산책로와 친수공원 등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다음 달 말부터 공사가 시작되면 중리 해변 명소인 해녀촌이 철거돼 명맥이 끊긴다. 영도구는 애초에 정비사업으로 만들어지는 친수공원에 '해녀 기념관'을 만들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기념관 건립에 필요한 시비 20억 원을 확보하지 못해 해녀촌이 영영 사라질 위기에 처했다.

이곳 해녀들은 정비 공사가 진행되는 동안 해녀촌 부근에 해녀 탈의실 등을 마련하고 영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요구하고 있다. 해녀촌에서 40년간 물질을 했다는 고금순(여·64) 씨는 "다음 달 말에 철거한다는 데 우리 할머니들이 길에서 옷 갈아입을 수는 없지 않으냐"며 "탈의실도 필요하고 해산물 팔 수 있는 곳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구는 이미 지급한 이전보상비 약 7000만 원 외에 추가 지원은 어렵다고 밝혔다. 구 해양수산과 김정석 연안 담당은 "미리 지급한 이전보상비로 해녀들이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구 차원에서 지원책을 찾겠다"며 "해녀 기념관 사업비 문제는 시를 설득해 해녀촌이 명맥을 이을 수 있도록 하겠다"고 말했다.

중리 해녀촌은 제주 출신 해녀 12명이 직접 물질을 해서 따온 해산물을 파는 곳으로 유명하다. 최근 TV 프로그램에 소개되면서 영도를 대표하는 명소로 자리 잡았다. 올해 여름에는 관광객이 많이 몰려 해녀 물질로만 수요를 감당할 수 없어 외부에서 해산물을 공급받을 정도였다.

해녀촌 철거 소식에 시민들도 아쉬워하고 있다. 송현철(29) 씨는 "중리 해녀촌은 해녀가 잡아 올린 싱싱한 해산물을 먹을 수 있는 곳인데 철거된다니 아쉽다"고 말했다.

김봉기 기자 superch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