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지 창간 70주년을 맞아 '오래된 미래 도시를 찾아서'를 매주 수요일 연재합니다. 여행하는 인문학자 민병욱(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가 쓰는 이 기획연재는 유서 깊은 도시, 매력적인 고장의 상징물을 찾아 나섭니다. 그 과정에서 문화도시의 진정한 상징물은 작고 오래된 것, 자연스럽게 시민의 마음에 깃든 것들 속에서 탄생함을 확인합니다. 거대하고 인위적이며 화려한 도시상징에 쏠리는 부산의 고정관념을 반성해보고자 합니다.


- 억압된 공산주의, 폴란드 시민들은 난쟁이로 투쟁했다

- 2001년 브로츠와프 골목 모퉁이 곳곳
- 술꾼 행인의 얼굴로 부활한 난쟁이 동상

- 이젠 축제의 주인공, 도시의 상징이 됐다

- 부산은 이런 거 없나…거창한 사업이나 대단한 건축 말고

다음은 어느 도시일까?

2015년 유네스코 문학도시, 2016년 유럽 문화수도이자 세계 책 도시, 연극 올림픽과 유럽 영화상 및 세계 브리지 게임 개최, 2017년 국제도서관협회의 국제학술대회와 월드 게임(올림픽 경기에 채택되지 않은 스포츠 종목의 종합 국제 경기대회) 개최 예정.

폴란드의 브로츠와프이다.

폴란드 브로츠와프 구시가지의 길바닥에 세운 '2인조 소방관 난쟁이상'. 소방관 난쟁이들은 1976년 불이 난 성 엘리자베스 성당 앞에서 '아직도 불을 끄는 모습'으로 서 있다. 민병욱 교수 제공

브로츠와프의 문화예술은 브람스의 '대학 축전 서곡'(1880년 완성)에서부터 시작된다고 하면 지나친 것일까? 그 곡은 브람스가 브레슬라우 대학교에서 명예 철학박사를 받은 답례로 작곡하여 그 학교의 특별 연주회에서 직접 초연을 지휘했다는 곡이다. 그 가운데 '제4곡 기쁨의 노래'는 '슬픔은 사라져라/미움도 사라져라/악마는 사라져라/우리 학교에 대항하는 그 누구라도/그것을 비웃는 그 누구라도 사라져라'라는 합창으로 맺는다.

곡을 초연(1881년 1월 4일)한 이후 대학교에서 '슬픔, 미움, 악마, 비웃는 자'는 사라졌을까? 1945년 종전 직후 이 도시는 '독일 브레슬라우'에서 '폴란드 브로츠와프'로 이름과 소속이 바뀌었지만, '악마'들은 자유국가로 독립한 1989년 직전까지 50년을 대학교에 머물러 있었다.

브로츠와프의 공중화장실에 그려진 난쟁이들.

그 악마들은 스탈린식 공산주의 체제이다. 악마를 쫓아내기 위하여 학생들은 거리의 벽마다 우스꽝스럽고 터무니없는 난쟁이 그림을 그리기 시작한다. 학생들은 벽화 위에 반정부 슬로건을 낙서로 덧붙이면서 시민들과 연대하여 소집단을 이룬다. 그 지도자 발데마르 프드리치는 '교회, 감옥, 거리'만이 자유를 느낄 수 있는 곳이라고 하면서 '왜 사람들이 난쟁이들의 불법적인 모임에 참여해야 하는지'를 외친다.

■ 난쟁이, 시민의 사랑을 받다

2001년 최초로 세워진 스비드니츠카 거리의 파파 난쟁이.

그 외침은 반정부 낙서로 분칠한 벽화 속의 난쟁이들과 오렌지색 모자를 쓴 시위 행렬로 전국으로 퍼져 나간다. 난쟁이는 체제에 억눌려 생존마저 위협받는 폴란드인들을, 오렌지색은 공산주의의 붉은 색과 가톨릭교의 노란 색을 함께 섞어서 민중을 억압하는 지배층에 대한 비판을 상징하는 것으로 전국에 퍼진다.

1981년부터 시작된 운동은 거리 해프닝과 함께 1987년에 이르러서 정점을 맞는다. 그해 오페라 축제가 열리고 있는 거리의 한 편에서 '화장지의 분배'라는 해프닝이 행해진다. 그 해프닝은 화장지마저 한 장을 여러 조각으로 찢어서 나누어 쓰는 현실을 풍자한 거리 행위예술이다. 다음 해 1월, 공산체제의 억압 탓에 식빵조차 배급받지 못한 시민들은 거리로 쏟아져 나와 오렌지색 모자를 쓰고 '난쟁이들의 혁명'을 외친다. 그 혁명은 공산당의 계엄령으로 잠시 좌절하지만 부활한다.

2001년 난쟁이들은 거리 벽화에서 청동으로 만든 동상으로 부활한다. 그 첫 동상인 파파 난쟁이가 오렌지 혁명의 출발지 스비드니츠카 거리에서 세워진 것을 시작으로 브로츠와프 대학교 앞에 5개의 동상이 자리한다. 난쟁이 동상은 골목 모퉁이, 길거리 벤치, 가로등, 가게, 가옥이나 빌딩의 유리창이나 입구 등 어디라도 자리하고 숨는다.

나팔을 불고 있는 난쟁이 동상.

난쟁이들은 구시가지 중심 지역에서 자기가 서 있어야 할 곳을 미리 알았다. 소방관 난쟁이 2인조는 1976년에 난 화재로 복원 중인 성 엘리자베스 성당 앞에서 아직도 불을 끄고 있다. 그 성당 앞 노천카페 사이에는 보드카와 맥주를 마시는 술꾼 난쟁이 2인조가 자리하고 있다. 그리고 밤이 오면 도시를 밝히는 가로등 램프에도 난쟁이가 매달려 있다.

자기가 있는 곳에 얽히고설킨 이야기마저 없는 난쟁이들은 흥미로운 자세로 사람들의 시선을 유혹한다. 지도를 보고 자기 갈 길을 헤아리고 있는 여행자, 기타를 치는 친구와 그 옆에 비스듬히 누워서 턱을 괴고 보고 있는 2인조, 풀밭에 누워서 다리를 꼬고 있는 난쟁이 등등도 곳곳에 숨어 있다.

구시가지의 중심 시장광장에서 휠체어를 탄 사람, 장님, 벙어리의 3인조 난쟁이의 제막식(2008년)이 치러지자 난쟁이들은 시민 곁으로 다가온다. 오드라 강을 오르내리는 유람선 선장실 창문에는 배의 키를 조종하는 난쟁이, 자동차의 운전석 앞 창문에는 기도를 드리는 난쟁이, 여행자 숙소의 벽에는 그네 위에서 그림을 그리고 있는 난쟁이 등등이 있다.

■ 난쟁이, 세계의 사랑을 받다

고풍스러운 브로츠와프 구 시가 중심지 모습.

난쟁이 동상은 해마다 9월이 오면 축제의 중심이 된다. 난쟁이는 저항문화운동의 벽화에서 시민혁명의 상징을 거쳐 시민의 부적으로 축제와 함께 있다. 난쟁이 동상은 브로츠와프 도시의 문화 브랜드가 된 것이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 1715년 난쟁이 동상이 브로츠와프보다 먼저 세워지고 난쟁이 정원으로 이름 붙여졌다. 그 정원이 미라밸 정원의 일부로서 영화 '사운드 오브 뮤직'의 촬영지인 미라벨 궁전에 연결되어 있음에도 난쟁이 동상은 잘츠부르크 도시문화 속으로 들어갈 틈이 없다.

여행자들에게 브로츠와프가 난쟁이 동상과 동의어가 되어 있다.

우리 부산의 문화브랜드는 무엇인가? 시민이 공유하는 작고 오래되고 소중한 도시상징은 무엇인가? 중앙동 40계단 부근에 있는 조각상인가?

민병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