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께서 살구나무 아래 단(杏壇)에 올라 제자들을 가르치며 유가가 형성되었다. 유학을 국교로 삼은 조선의 교육기관인 성균관에는 은행나무가 있었고 지금도 있다. 유교의 상징이 살구나무에서 은행나무로 바뀌었다. 살구나무 행(杏)이 은행나무도 뜻하게 된 연유다.

개를 죽이는 열매이기에 살구(殺狗)라는 설이 있는데 와 닿지 않는다. 나무 역사로 따지면 속씨식물인 살구나무가 출현하기 일억여 년 전부터 겉씨식물인 은행나무가 있었다. '쥐라기 공원' 영화에서처럼 공룡들이 살았던 중생대 쥐라기에 번성했던 나무다. 지구가 웬 큰 별과 충돌하여 빙하기가 되어 공룡은 멸종했지만 은행나무는 살아남았다.

돌연변이나 진화도 없이 하나의 종이 지금까지 이어지며 꿋꿋이 살고 있다. 그래서 은행나무는 살아 있는 화석이다. 은행(銀杏)나무 씨앗 껍질에서 고약한 냄새가 나자 사람들 인심이 갑자기 사나워졌다. 암나무를 죽이고 수나무만 살리자고, 암수 감별로 냄새의 주범인 암나무는 저 멀리 귀양 보내자고 주장한다.

인간만이 먹는 은행이 귀양지 숲에 떨어지면 산짐승들도 꽤 싫을 것이다. 은행나무는 사람 옆에서 늘 살아왔던 나무다. 수나무도 암나무가 곁에 없으면 외롭다. 더 많은 화분을 만들어 멀리 날리려 힘쓸 것이다. 더 안 좋은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지금처럼 암수 은행나무 같이 살며 가을의 쿰쿰한 냄새로 즐기는 편이 낫다. 사람도 남자, 여자 서로 멀리 떨어져 살라고 하면 순리에 맞을까? 은행나무도 마찬가지다. 오로지 인본주의 관점에서만 생명체를 인위적으로 재단하려 들지 말자.

박기철 경성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