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번화가에서 겨우 3㎞ 떨어진 곳
- 최고 부촌 바로 옆에 묘지가 있다
- 묘지라는 낯섦이 오히려 특별한,
- 공원같은 레콜레타를 거닐면
- 삶과 죽음은 보다 가까워진다

만우절의 거짓말과 같이 여행의 행선지가 묘지임에도 아름답게 느껴졌다고 하면 산 자와 죽은 자를 놀리는 말일까?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 구도심 한복판에 있는 레콜레타 묘지. 마치 산책로처럼 친근하고 평온한 분위기다.

영국 공영방송 BBC에서 '세계 최고의 묘지들'(2011년10월 31일)과 미국 뉴스방송사 CNN에서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 10'( 2013년 2월 20일)을 방송한 것을 보면 그렇지 않을 것이다.

BBC의 방송은 10월의 마지막 밤 핼러윈 축제와 11월 1, 2일 멕시코 '죽은 자의 날' 축제 사이에 이루어졌다. 모든 성인 대축일 전야제의 줄임말인 핼러윈은 죽은 사람의 영혼이 이승으로 되돌아오는 날이며, 산자가 영적 세계에 가장 가까이 갈 수 있는 날이다. '죽은 자의 날'은 그 전날 '죽은 아이들의 날'과 함께 산 자가 이승의 가족과 친구를 만나기 위해 찾아오는 죽은 자를 환영하는 날이다. 묘지가 산 자와 죽은 자가 이별하고 재회하는 장소이기에 그 방송이 10월의 마지막 밤에 이루어졌을 것이다.

CNN의 방송은 역사의 매력적인 인물들을 기억하기 위한 의도로 겨울 휴가객을 대상으로 선정한 것이라고 한다. 휴가객들은 그 묘지에서 역사를 바꾸고자 한 인간의 매력을, 아니면 묘지 그 자체의 '아름다움'을 느꼈을지 모른다.

■구시가지 중심지에 있는 묘지

레콜레타 묘지의 입구. 정문에 써놓은 글귀는 "주님을 기다리며"라는 뜻이다.

축제를 즐기거나 휴가차 묘지를 둘러본 산 자들은 묘지에서 무엇을 볼까? 소설 '공동묘지에 사는 남자'(피터 S.비글 지음, 정윤조 옮김)는 "죽음도 배워야 하는 거예요, 삶과 마찬가지로"라면서 말할 것이다. "아무 데나 묘비를 세워 놓고 그 아래 엄마가 묻혀 있다고 말해주면 그냥 믿을 거예요. 사람에게 필요한 건 묘비뿐이에요. 묘비만 있으면 다들 그 돌덩이 앞에서 가서 '미안해요, 엄마. 내가 나빴어요'하고 울먹거리죠. 진짜 무덤이 아니라도 아무도 상관하지 않아요."

정말 그럴까? 두 방송에서 공통으로 선정한 곳, 아르헨티나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레콜레타 묘지로 가보자.

묘지는 가장 번화가인 오벨리스크 광장부터 채 3㎞도 되지 않는 거리이다. 스페인에서 독립을 선언한 5월 혁명(1810년 5월 25일), 군사독재의 인권 탄압을 전 세계에 고발한 '5월 광장의 어머니들'(1977년 4월 13일)이 여전히 활동하고 있는 5월 광장에서부터도 4㎞도 되지 않는다. 묘지는 가장 부촌인 팔레르모 지역과 이웃한 구시가지의 중심지에 있다. 묘지는 1822년 프랑스 건축가 카텔린(P.Catelin)의 설계로 준공되었다가 1881년 이탈리아 건축가 부샤초(J.A.Buschiazzo)에 의해 리모델링되어 현재에 이른다.

■그 자체로 아름답다

방문객들에 둘러싸인 에바 페론의 묘지.

도리아 양식(받침도 없이 세로로 홈이 파여 있는 견고하고 꾸밈없는 기둥)의 정문 상단에는 스페인어로 '고이 잠드소서'가 새겨져 있다. 이어 같은 양식으로 된 출입구상단에는 라틴어로 '주님을 기다리며'가 새겨져 있다. 정문과 출입구 사이 불과 몇 미터도 되지 않는 거리는, 마치 장례 미사에서 죽은 자들이 죽음에서 새로운 삶으로 부활하기 위해 잠시 머무는 곳인 것 같다. 그 거리는 산 자가 옷깃을 여미고 마음을 다듬으며 죽은 자에게 다가갈 채비를 하는 곳인 것 같기도 하다.

대다수 국민이 가톨릭 신자인 만큼, 예수 입상을 중심으로 방사형으로 된 묘지에는 고이 잠들어 부활을 기다리는 역사적 인물들, 정치가와 군인, 문인과 예술가, 교수와 학자, 체육인과 배우 등을 모셨고 그 수만 해도 240여 명이 넘게 잠들어 있다.

역사를 바꾸고 새로 쓴 인물들이 잠들어 묻힌 집은 그 지붕부터 남다르다. 지붕들은 90개가 넘는 국가지정기념물을 포함하여 약 4700개쯤 되는 서로 다른 둥근 천장들로 이루어졌다. 그 지붕들은 전문가들에게는 비잔틴 양식, 신고전주의 양식, 아르 누보 양식, 아르 데코 양식 등으로 구별되지만 그저 화려하거나 아름답게 보일 뿐이다.

그 둥근 지붕들이 이루고 있는 회랑에 들어서면 역시 출입구도 서로 다르다. 출입구 문 위쪽에 죽은 자의 이름을 새겨 놓고, 그 앞에는 조각상을 세워 놓았다. 규탕(Jules Coutan, 프랑스 국적, 1848~1939), 아아이그너(Richard Aigner 오스트리아 국적, 1867~1925) 등 조각상을 만든 작가의 이름도 그 밑에 새겨놓았다. 지붕의 개수 약 4700개보다는 많지 않지만 그 조각의 전시로 회랑이 이어진다.

■에바 페론의 숨결을 느끼며

조각 전시장으로 된 회랑을 지나다 보면 누구에게나 이름으로, 노래로, 일화로 잘 알려진 에바 페론(1919년 5월 7일~1952년 7월 26일)의 묘지도 있다. 그 묘지는 가장 많은 꽃으로, 가장 많은 관광객으로 둘러싸여 있다. 관광객이 그 묘지를 찾는 것은 그녀가 가장 널리 알려져 익숙한 이름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녀가 '탱고까지 죽음으로 몰아간 침묵, / 위에서는 명령, 아래서는 눈물. / 한창 젊은 나이. 우리는 아무것도 아니었어요. /(…) 당신을 치장시키고 당신에게 흙을 뿌리는 동안 / 공화국은 새카맣게 물들었지요. / 대중 앞에 선 제단의 성녀'(마리아 엘레나 왈시의 시 '에바' 중·김유진 옮김)이었기 때문일까? 도심과 묘지, 혹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풍경으로 부산을 거듭나게 할 수는 없을까?

민병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 bmw@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