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오쿠자바, 푸시킨, 빅토르 최…
- 소련 공산주의의 압제에
- 침묵하지 않았던 시인·가수들

- 울긋불긋한 거리 벽화엔
- 자유로운 욕설·낙서로 가득
- 밤마다 아스팔트 거리선
- 젊은이들이 변화를 갈망한다

'네 이름도 블랙리스트에 들어 있느냐'라는 물음이 문화예술가들의 첫인사가 된 지 반년이 지나간다. 그 반년 동안 블랙리스트에 갇혀서 숨죽여 지내지도 않았고 오히려 밤마다 아스팔트 거리에서 예술가들은 축제를 열었다.

모스크바 아르바트 거리에 그려진 옛 소련의 고려인 록 가수 빅토르 최의 초상. 그는 옛 소련에 록 음악을 전파하며 자유와 저항을 노래했다.

그 축제판에서는 러시아 저항시인 오쿠자바(Bulat Shalvovich Okudzhava, 1924년 5월 9일~1977년 6월 12일)의 노래 시(Bards)가 늘 울려 퍼지는 것 같았다.

'너의 낯선 이름과 너의 아스팔트는/강물처럼 흐르고 강물처럼 투명하다./아, 아르바트 거리, 나의 아르바트 거리여,/너는 나의 부름이요,/너는 나의 기쁨이요, 나의 불행이다./(…)/4만 개의 다른 포장도로를 사랑할지라도/너의 사랑으로부터 벗어날 수가 없구나./아, 아르바트 거리, 나의 아르바트 거리여,/너는 나의 조국/끝까지 너를 지키리라'('아르바트 거리의 노래', 조주관 번역).

■론리 플래닛 선정 올해 가볼 도시

저항시인 오쿠자바의 동상.

그 아르바트 거리는 어디에 있는가? 그 거리에 가면 노래 시의 제목처럼 '아르바트 거리의 아이들'도 만나고 '아르바트 거리의 로맨스'도 이룰 수 있을까? 비극으로 끝이 나야만 더욱더 아름다운 사연이 될 수 있는 거리의 로맨스를 꿈꾸자. 그것도 세계 여행 안내 사이트이자 여행 안내서로 널리 알려진 '론리 플래닛'이 '2017년 최고의 여행지 베스트 10- 도시 편'에서 선정한 모스크바에 있는 아르바트 거리로 가자.

지하철 스몰렌스까야 역에서 아르바뜨스까야 역 사이에 있는 그 거리에는 위대한 예술가들이 살았던 흔적이 박물관의 이름으로 그대로 남아 있다. 출입구에서 멀지 않은 곳 자기 이름을 딴 박물관 앞에서 푸시킨(Aleksandr Pushkin, 1799년 6월 6일~1837년 2월 10일) 부부가 나란히 서 있다. 그는 예술가들에게 '너의 자유로운 혼이 가고 싶은 대로/너의 자유로운 길을 가라./너의 소중한 생각의 열매들을 실현하라./그리고 너의 고귀한 행동에 대한 아무런/보상도 요구하지 말라.'(시 '시인에게', 박형규 번역)라고 말을 건넨다.

이웃 아파트 창가에 턱을 괴고 있던 벨르이(Andrei Bely, 본명- 보리스 니콜라예비치 부가예프, 1880년 10월 26일~1934년 1월 8일)도 '깊은 생각'(시의 제목)에 잠겨 있다가 덧붙인다. '태초부터 우리는 혼자였다./우리는 주위로부터 외면당한 채/우리는 하나뿐인/우리는 멀리 있는/친구, 멀고 먼 그리고 고독/너의 길/우리는 결코 서로에게 돌아오지 않으리'라는 말을.

■예술인들 모신 박물관

아르바트 거리 현란한 벽화.

태초부터 혼자이기에 자유로운 영혼의 길을 갈 수 있다고 예술가들은 깨달았을까? 이웃에 살았던 작곡가 스크랴빈(Alexander Nikolayevich Scriabin, 1872년 1월 6일~1915년 4월 27일)을 기념하는 스크랴빈 박물관에서 그의 교향곡 제4번 다장조 '법열의 시'를 들으면 깨달을 수 있을까? 박물관의 1층에서 여전히 열리고 있는 음악회에 참석하여 연주를 듣고는 2층으로 올라가 그의 삶을 되짚어보면 왠지 깨우침이 올 것도 같다.

그 깨우침을 얻지 못하더라도 거리를 따라서 자유롭게 걸어가자. 골목길에서 시인 레르몬토프 박물관이 기다리고 있다. 레르몬토프(Mikhail Yuryevich Lermontov, 1814년 10월 15일~1841년 7월 27일)는 묻는다. 푸시킨으로 하여금 귀족과 결투를 하게 하고 결국 죽도록 만들었던 푸시킨의 부인과 푸시킨이 왜 손을 잡고 동상으로 서 있는지를. 친구와의 사소한 결투로 죽은 시인 레르몬토프는 사람들에게 자신의 시 '시인의 죽음'을 읽어보았는지, 푸시킨이 황제를 옹호하는 귀족의 전제주의에 살해되었음을 알고 있는지 물어본다.

그래서 그런지 박물관 골목길 벽에는 소련 공산당에 저항했던 지식인들이 서명한 흔적들, 영어로 된 욕설과 낙서들이 가득 차 있다. 이웃에는 타락한 현실의 추악한 모습을 사실적으로 그렸던 고골(Nikolai Vasilievich Gogol, 1809년 3월 20일~1852년 2월 21일)이 자살로 생을 마감한 방 두 칸짜리의 박물관, 공산주의자들이 대중을 죽음으로 이끌어 가고 있다는 저항시를 쓰기도 하면서 자살한 츠베타예바(Marina Tsvetaeva, 1892년 10월 8일~1941년 8월 31일) 박물관도 있다.

■빅토르 최의 노래 여전히 들리고

위대한 예술가들의 박물관을 둘러보고 나면 오쿠자바가 꾸부정하게 서서 포켓에 손을 넣은 채 기다리고 있다. 동상 앞은 젊은 남녀들이 기타를 치며 부르는 노래와 거리예술가들의 공연으로 가득 찬다. 거리예술가의 공연을 보면서 걷다 보면 샛길로 난 골목의 벽화 앞에서 자연히 발걸음이 멈춰진다. 그 벽화는 흔히들 통곡의 벽으로 부르는 추모의 벽이다. 벽화는 소련 공산주의의 압제에 대한 저항과 자유를 노래한 고려인 동포 록 가수 빅토르 최(1962년 6월 21일~1990년 8월 15일)를 그린 것이다. 그는 벽화 속에서 젊은이들의 열광을 받으면서 아직도 노래를 부르고 있다. '변화를! 우리의 가슴은 요구한다./변화를! 우리의 눈동자는 요구한다./우리의 웃음과 눈물에/우리의 고동치는 핏줄에/변화를!/우리는 변화를 원한다.'('변화' 중, 출처- 우랄 잉여공장)

변화는 가슴에서 시작된다. 문화계의 블랙리스트에 침묵하거나 사적 이익을 위하여 활용한 관련 단체들, 문화 부역자들부터 통절히 반성하고 변화하자.

민병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 bmw@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