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년 만에 개방된 법기수원지
- 0.5㎞ 부터 6.5㎞ 까지 3개 코스

- 5시간 소요 법기둘레길 걸으니
- 수령 오래된 수목들 위엄 뽐내
- 잠시 앉아 땀 식히니 힐링 절로

- 데크로드 아래 건축물 취수터널
- 일제강점기 선조들의 아픔 반추

경남 양산시 '법기 치유의 길'은 동면 법기수원지 입구에서 왼쪽 본법 마을 방향으로 가는 곳에서 만나는 이정표에서 시작된다.

	법기수원지의 백미인 편백 숲길을 시민들이 걷고 있다. 수령이 최대 130년가량인 편백들은 높이가 30m가 넘어 보는 것만으로도 압도된다. 양산시 제공

법기 치유의 길은 왕복 40분부터 4~5시간이 소요되는 곳까지 총 3가지 코스로 구성돼 있다. 부산 명장정수사업소 법기수원지소에서 수원지 전망대 간 A 코스(0.5㎞)와 법기 편백 숲길 B 코스(1.3㎞), 법기 둘레길 C 코스(6.5㎞) 등 3곳이다. A 코스는 왕복 40분, B 코스는 왕복 1시간 30분, C 코스는 4시간 30분~5시간이 소요된다. 개인 취향과 체력에 따라 코스를 고르면 된다.

법기 치유의 길은 코스만 다를 뿐 주변 산세와 경관은 비슷하다. 따라서 어느 코스를 선택하든 법기 치유의 길 특유의 절경과 건강한 숲이 주는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다.

법기 치유의 길로 가려면 법기수원지 유원지를 거쳐야 한다. 법기 치유의 길을 걷기 전에 수원지의 각종 볼거리를 관람하는 것은 필수다. 희귀 수목과 평소 접하기 어려운 일제강점기 댐 건설과 관련한 역사적 사료를 접할 수 있기 때문이다.

법기수원지에 들어서면 우선 높이 30m가 넘는 편백 1만 그루를 비롯해 독특한 부채모양의 반송, 히말라시다, 벚나무, 추자나무, 은행나무, 감나무 등 다양한 수목들로 우거진 숲이 방문객을 반긴다. 봄철을 맞아 벚꽃이 만개해 주변 산세가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이들 수목은 댐 축조 당시 심어진 것으로 수령이 80년에서 130년가량 됐다. 꿋꿋하고 위엄있는 자태가 귀인을 만난 듯한 느낌을 준다.

댐 마루에서 데크로드 쪽으로 가면 오래된 석조 건축물인 취수터널을 만난다. 출입구 상부에는 일제강점기 제3대와 제5대 조선 총독을 지낸 사이토 마코토가 쓴 한문 글귀가 새겨져 있다. 그는 우리 민족문화 말살정책을 편 장본인으로, 그의 글귀를 보면 일제 강점기의 아픈 역사가 그대로 느껴진다.

법기수원지는 1932년 건설된 후 출입이 금지되다 79년만인 2011년 7월 15일 일부 구역이 개방됐다. 현재 개방된 곳은 수원지 전체 680만㎡ 중 댐과 수림지 등 2만㎡다. 일제강점기 우리 선조들의 피·눈물로 건설된 아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수원지 안에는 하늘계단으로 불리는 124계단이 있다. 계단을 따라 제방에 오르면 확 트인 수원지 댐을 보게 된다. 계단 끝에는 독특한 모양의 7그루 반송이 반긴다. 한 뿌리에서 여러 갈래로 가지가 갈라져 펼쳐진 부채모양이 장관이다. 사방이 산으로 둘러싸인 댐은 물이 푸르다 못해 잿빛처럼 보일 정도다.

멀리 보이는 취수탑은 한 폭의 풍경화를 보는 듯한 착각을 느낄 정도로, 보고 있으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주변 경치가 정말 좋아 C 코스를 선택해 걷기로 했다.

	취수탑과 어울러진 수원지의 빼어난 절경.

법기수원지가 한눈에 보이는 둔덕길에서 웅상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멀리 울산~양산~김해 국지도 60호선 법기터널이 보였다. 공사가 끝난 미개통 구간도 훤히 드러났다. 법기터널쪽으로 걸어가니 길 경사가 심하고 울퉁불퉁한 곳이 많아지는 등 다소 험하게 느껴졌다. 파릇파릇 솟아오르는 새싹과 붉은 철쭉, 아름드리나무가 봄의 정취를 물씬 풍긴다.

동면 쪽 부산~울산 7호 국도 쪽으로 오르니 산새 소리가 청아하게 들렸다. 가끔 들리는 다람쥐의 찍찍대는 소리가 산길의 정적을 깨웠다. 길이 한적하니 마음이 청아해지고 기분도 좋아졌다. 이곳에서 부산 금정구 쪽으로 걸어가니 동면 남락마을이 한눈에 보였다. 이곳에는 길가에 편백도 많이 심어져 있었다. 편백은 인체에 유익한 피톤치드를 내뿜는 수목으로 휴양림 등에서 필수적으로 심는다. 그래서 그런지 몰라도 이곳을 걸으니 유독 더 마음이 상쾌해졌다.

	일제강점기에 만든 취수터널 모습.

남락마을 부근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췄다. 주위를 둘러보니 '소나무 에이즈'로 불리는 재선충에 감염된 소나무를 소각해 묶어 놓은 현장이 곳곳에서 목격됐다. 소나무 재선충의 심각성이 느껴졌다.

조금 더 가니 시가지가 한눈에 보이는 산지마을이 나타났다. 산 중턱 고지에 오르니 전망이 확 트여 시원한 느낌을 준다. 고지에 앉아 땀을 식히니 신선놀음이 따로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곳에서는 웅상 시가지를 비롯해 부산 철마면과 정관면 일부도 보였다.

이 구간은 사람이 별로 다니지 않아 사색하기 좋은 코스이다. 군데군데 맑은 계곡이 있어 땀을 식히며 쉬어 가기도 좋다. 둘레길이어서 길이 별로 험하지 않아 가족 단위로 걷기에도 좋다. 지금 봄철을 맞아 소나무와 편백 등 나무들이 푸른 옷으로 갈아입는 중이어서 한층 싱그러움을 느낄 수 있다. 걸으면서 힐링하기에 적격이다.

사람들의 발길이 닿지 않은 원시림의 신비를 보는 듯한 느낌을 주는 곳도 여럿 있다. 봄철 연인이나 가족, 친구끼리 손잡고 법기 치유의 길을 걸으며 옛 추억을 더듬어 보는 것도 멋지다.

김성룡 기자 sr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