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분증을 도난당한 남성이 경찰과 법원의 부주의 탓에 두 차례나 전과 기록이 등록됐다가 삭제되는 황당한 사건이 발생했다. 법원은 "국가가 남성이 입은 손해를 배상하라"고 판결했다.

30일 부산지법 민사4부(김성수 부장판사)에 따르면 A 씨는 2015년 5월 도박을 하다가 경찰관에게 적발돼 신분증 제시 요구를 받았다. A 씨는 수배 사실을 숨기기 위해 33년 전 신분증을 훔쳐 알게 된 B(54) 씨의 주민등록번호를 경찰에 불러줬다.

당시 경찰관은 A 씨의 신분증을 확인하지 않고 B 씨를 즉결심판에 회부했다.

부산지법은 그해 6월 3일 B 씨가 불출석 상태에서 도박죄로 벌금 5만 원을 즉결 선고했다.

며칠 뒤 A 씨는 이러한 범행이 들켜 구속됐다. 경찰은 B 씨의 즉결심판 기록을 삭제했다. B 씨는 법원에 정식 재판을 청구했고, 법원은 공소기각 판결을 내렸다.

이에 앞서 A 씨는 1987년 12월 향정신성 의약품 위반죄를 저지르고 B 씨 행세를 하다가 집행유예를 선고받았다. 수사기관은 B 씨의 전과기록에 이를 기재했다가 명의 도용 사실을 확인하고 2000년 2월 전과기록을 삭제했다.

B 씨는 A 씨를 상대로 부산지법에 소송을 냈고, 조정을 거쳐 A 씨에게 3000만 원을 받기도 했었다. A 씨는 1984년 B 씨의 신분증과 학생증을 훔친 뒤 B 씨 행세를 했던 것으로 드러났다.

B 씨는 또 "피의자 신분 확인을 소홀히 한 경찰관의 과실로 이러한 피해를 입어 정신적 고통을 받았다"며 국가를 상대로 위자료 1억 원을 청구하는 소송을 냈다.

1심은 경찰관의 과실을 인정해 국가는 B 씨에게 700만 원 배상하라고 선고했지만 국가는 항소했다.

재판부는 "경찰관의 과실로 즉결심판을 받게 돼 B 씨가 정신적 고통을 받은 사실이 명백해 국가는 B 씨에게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면서 국가의 항소를 기각했다.

송진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