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고문도구 박물관
- 유대인 대학살 박물관
- 공산당·냉전 박물관
- 스메나타 박물관
- 리거 기념관…

- 바츨라프 광장을 따라 걸으면
- 프라하의 위대함이 끝없이 밀려온다

체코 프라하 바츨라프 하벨 국제공항에 내려서 공항버스를 타고 중앙역에 도착한 때가 정오 무렵이다.

프라하의 중심, 바츨라프 광장. 길가에 중요한 인물을 표현한 동상이 있다. 이 길은 국립박물관으로 연결된다.

프라하에 도착하여 숙소를 중앙역 부근으로 정한 것은 박물관에서 먼저 도시의 역사 유산과 문화 자산을 둘러 보고나서 여정을 짜기 위해서이다. 중앙역 앞에서 제일 먼저 눈에 띄는 것은 의아하게도 미국 대통령 윌슨(Woodrow Wilson, 1856년 12월 28일~1924년 2월 3일)의 동상이다. 1871년 12월 14일 처음 문을 열 때, 역명은 당시 프라하가 소속된 보헤미아의 국왕 겸 오스트리아 황제 프란츠 조셉 1세(Franz JosefⅠ, 1830년 8월 18일~1916년 11월 21일)의 이름으로, 더군다나 소련 위성국가 시절(1945년~1953년)에는 윌슨 역으로 이어졌다.

■골목마다 박물관 미술관 거리예술가

성소수자들이 바츨라프 광장에서 까를 다리 쪽으로 행진하고 있다.

역을 지나 윌슨로를 따라 내려가면 바츨라프 광장이 기다리고 있다. 광장은, 체코 민족의 수호신 바츨라프의 동상, 1968년 소비에트로부터 자유와 독립 그리고 민주주의를 외치고 분신 자살하여 '프라하의 봄'을 촉발시킨 파라(Jan Palach, 1948년 8월 11일~1969년 1월 19일)와 쟈익(1950년 7월 3일~1969년 2월 25일)의 사진을 중심으로 국립박물관에 이른다. 동상에서 박물관에 이르기까지의 거리 양편은 호화롭고 번화한 호텔, 음식점, 쇼핑의 천국을 이룬다. 그 거리를 벗어나서 접어드는 어떤 골목길에도 많고 다양한 박물관과 기념관, 예술관과 미술관 그리고 거리예술가들이 기다리고 있다.

골목길에서 처음 만난 것은 민족주의 운동가 리거(Rieger, 1818년 12월 18일~1903년 3월 3일) 기념관이다. 그의 아버지로부터 5대에 걸쳐서 살았던 궁전이며, 그의 딸이 수집한 가구, 조각품, 도자기, 유리공예품 등을 전시한 곳이다. 안내인은 중앙역 뒤쪽 리에그로비 공원(Riegrovy sady)에 그의 동상도 있다고 하면서 그의 집을 기념관으로 개관한 것은 민족주의 운동의 역사와 그 시대 예술품을 시민들에게 널리 알리기 위해서였다고 덧붙인다.

기념관에서 출발하여 박물관까지 둘러보면서 접한 프라하의 역사는 인간의 잔혹성을 보여주는 고문에서(고문도구 박물관) 시작하여 유대인의 대학살(유대인 박물관), 공산주의(공산당 박물관)와 냉전 시대(냉전 박물관)의 폭정과 억압의 표상으로 이어진다.

■예술가 이름이 곧 박물관 이름

바츨라프 광장의 작은 가게.

1993년 1월 1일 체코의 독립 이후, 박물관은 학살과 폭력 속에서도 민족정신을 지켜준 위대한 예술가의 생애로 채워지고, 문화예술의 숨결과 개인의 살아가는 이야기의 모음으로 바뀌어간다. 박물관은 예술가의 이름을 그대로 빌려 쓰면서 그의 생애를 후손들에게 전해준다.

교향시 '나의 조국'(1874년~1879년) 연작 등으로 민족 음악의 창시자로 추앙받는 스메타나(Smetany, 1824년 3월 2일~1884년 5월 12일) 박물관, 교향곡 9번 '신세계'(1893년)로 고국에 대한 향수를 담은 드보르작(1841년 9월 8일~1904년 5월 1일) 박물관, 영화 '프로코크 씨' 시리즈(1947년~1955년)로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 국민 감독으로 불렸던 제만(Karel Zeman, 1910년 11월 3일~1989년 4월 5일) 박물관, 대형 그림 '슬라브 서정시' 연작(1912년~1930년)으로 큰 명성을 얻은 현대 그래픽 디자인의 선구자 무하(Alphonse Mucha 1860년~1939년) 박물관 등이 있다.

박물관은 한 예술가의 생애를 보여주기도 하지만 특정한 지역, 특정한 종류의 예술- 중유럽 현대예술(캄파 박물관)을, 시각예술(몬타넬리 박물관)을, 아시아와 아프리카 및 아메리카 문화(나프르스텍 박물관)를, 체코 입체파 화가들의 작품(체코 큐비즘 박물관)을 보여주기도 한다.

■이렇듯 다채로운 일상의 아름다움

박물관은 역사와 전통 유산, 예술가와 예술의 전당이라는 과거의 시간과 권위에 머무르지 않고 도시민의 일상적인 삶과 생활을, 평범함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기 시작한다. 장난감, 블록 장난감, 미니어처, 밀랍, 변기와 요강, 초콜릿, 맥주, 사랑, 성 기구, 미스터리 등이 그대로 박물관의 명칭과 주제가 되면서 관련 물품이 전시되고 진열된다.

위대한 인물에서 평범한 시민으로, 문화예술에서 일상생활로, 과거에서 현재로 전시의 주제가 바뀌어가는 박물관 순례를 하면서 만나는 것은 광장과 골목길에서 벌어지고 있는 거리 예술이다.

광장이나 골목길마다 거리예술가들은 개인이나 몇몇이 모여서 그림을 그리거나 악기를 연주하거나 합주를 한다. 때로는 예술가들은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하여 행진하면서 악기를 연주하거나 합주를 하기도 한다.

■간직할 것만 잘 간직해도

도시 전체가 하나의 예술작품으로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도시를 둘러보는 것은 여행이 가져다주는 선물이다.

중세와 근대, 현대가 공존하는 도시에서 그 역사 유산과 문화 자원을 함께 보고는 내 고향 부산으로 되돌아오면 숨이 막힐 때가 많다. 개발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지워버린 근대를 되살리지는 못하더라도 그래도 부산에서 살다가 간 그 많은 예술가의 삶과 흔적이라도 보존하자. 최소한 지금 열고 있는 문화예술가들의 기념관이라도 지원하여 향기로운 문화를 지우지나 말자.

민병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 bmw@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