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스토니아 타르투를 인터넷에서 검색하면
- 민족문화운동 성지와 타르투 대학이 뜬다
- 이 대학의 모든 건물과 그것을 둘러싼 기억이
- 역사이며 문화유적이다

여정을 짜면서 검색을 통해 얻은 국가와 도시에 관한 정보와 실제 현장이 꼭 일치하는 것은 아니지만, 에스토니아 타르투(Estonia Tartu)는 거의 틀리지 않는다. 검색을 하면 그 도시를 설명하는 주요어가 타르투 대학교(University of Tartu)와 민족(문화)운동의 발생지에 한정되어 있다.

타르투 시내에서 만나는 이 도시의 명물 천사의 다리(왼쪽)와 악마의 다리.

점심 무렵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에마여기(‘에마’는 어머니, ‘여기’는 강을 뜻함) 강변을 따라 구시가지로 들어가면서 여기저기 식당을 기웃거릴 때 ‘셰익스피어(Shakespeare)’와 ‘와일드(Wilde)’라는 간판이 손짓하듯 기다리고 있다.

■‘키스하는 학생의 분수대’를 만나고

타르투 시청 앞의 ‘키스하는 학생 분수대(Kissing Stu-dents Fountain). 1998년 마티 카르민이 조각했다.

‘카페 셰익스피어’로 먼저 발길을 돌리자 에스토니아 최초의 근대 극장 ‘바네무이네(Vanemuine)’의 설립자이면서 연출가 메닝(Lavastaja Karl Menningu, 1874년 4월 29일~1941년 3월 5일)의 조각상이 원반 위에 서서 회전하면서 주위를 둘러보고 있다. 그 곁에는 있는 작곡가 투빈(Eduard Tubin, 1905년 6월 18일~1982년 11월 17일)과 무명의 음악가 조각상이 예술 창조의 직관을 기다리는 듯 가만히 서 있거나 앉아 있다.

이어 발길이 멈춘 곳은 ‘와일드’라는 간판이 서 있는 곳이다. 간판에는 ‘와일드의 포도주, 예술·포도주·레스토랑’, 벽면에는 ‘무료 와이파이’(Wi-Fi)가 적혀 있고, 옆에는 두 명의 와일드가 의자에 앉아 마주 보는 동상과 설명문이 붙어 있다. 아일랜드의 시인·소설가·극작가 오스카 와일드(Oscar Wilde, 1854년 10월 16일~1900년 11월 30일)와 에스토니아의 작가 에두아르드 바일드(영문 이름 Eduard Wilde, 1865년 3월 4일~1933년 12월 26일)는 서로 한 번도 만난 적도 없이 단지 성의 철자가 똑같다는 이유로 마주보고 있다.

‘와일드 카페’에서 포도주 대신 맥주를 원하자 웨이터는 지역 맥주 알레꼬끄(A.Le Coq)를 마시고 분수대로 가면 키스하는 연인들을 더 예쁘게 볼 수 있다고 농담을 한다. 요즘 우리나라 거리에서도 키스하는 학생들도 볼 수 있다는 생각을 하면서 발걸음은 그냥 ‘키스하는 학생의 분수대’(Kissing Students Fountain)를 찾아서 간다. 1948년 시청사 앞에 분수대가 먼저 건립되고, 1998년 조각가 카르민(Mati Karmin·58)이 ‘키스하는 학생’이라는 조각상을 세운다. 분수대에 도착하자 키스하는 조각상을 바라보며, 휘날리는 물의 세례를 받으면서, 키스의 열기를 식히는 연인들이 아름다운 자세로 서 있다. 키스의 장면들이 있어 대학도시답게 느껴지는 것은 웬일일까?

■천사와 악마의 다리를 지나

아일랜드의 문호 오스카 와일드(왼쪽)와 에스토니아의 작가 에두아르드 바일드가 마주보는 동상.

도시 한가운데 자리 잡은 타르투 대학교가 있는 토메매기 언덕길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1632년 스웨덴 구스타브 2세 아돌프(Gustav II Adolf, 1594년 12월 9일~1632년 11월 6일)에 의해 건립된 대학교로, 언덕길을 오르면 ‘천사의 다리’(Angel’s Bridge, 1814년 건립)를 지나고 곧바로 가면 ‘악마의 다리’(Devil’s Bridge, 1808년 최초 건립 뒤 새로운 다리로 두 차례 교체)가 나온다. 19세기에 이르러 학생들은 합창단 공연을 위한 플랫폼으로 다리를 사용하다가 그 교량 사이에서 서로 마주 보며 노래 부르기를 경연한다. 그 경연이 도시 전체로 퍼져 나가면서 1869년 라울루피두(Laulupidu, 에스토니아 노래 축제)로, 1991년 발트 3국의 독립을 가져다준 노래혁명으로 확산되어 간다.

천사의 다리와 악마의 다리라는 명칭은 두 다리를 끼고 있는 타르투대학교의 학생들이 입학과 졸업 사이에 거치는 면학의 분위기를 상징하는 것 같다. 학생뿐만 아니라 교수들도 비슷하지 않았을까. 갓 시작했을 때는 밝고 희망찬 천사 같은 분위기였겠지만, 성취를 앞둔 마지막 단계에서는 악마를 대한 것처럼 힘들지 않았을까.

■여행자는 되돌아보며 부끄러워한다

그 흔적들을 두 다리 사이에 있는 역사와 문화 유적들 예컨대 대학건물, 박물관, 미술관, 기념관, 식물원, 동상, 묘지 등지를 거닐다 보면 만날 수 있었다.

타르투(옛날 명칭은 Dorpat)대학교에서 천문학의 대가 스트루브(Wilhelm von Struve, 1793년 4월 15일~1864년 11월 23일)부터 현대 문화기호학의 창시자 유리 로트만 (Yuri Lotman, 1922년 2월 28일~1993년 10월 28일)에 이르기까지 교수들은 그 학문의 업적을 쌓았다. 그 업적은 대학본관과 관련 단과대학 건물 내외의 벽면에 사진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 기록에 거기서 그치지 않는다. 19 세기에 건립된 타르투대학교의 회의장(Assembly Hall)의 벽면을, 이 학교를 잠시라도 거쳐 간 저명인사들, 예컨대 피아니스트 프란츠 리스트(F. Liszt)를 비롯하여 달라이 라마의 성하(Dalai lama) 등의 모습으로 장식하고 그들이 남긴 연설을 언제나 들을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1632년 설립된 타르투대학교에서 채 100년의 역사도 되지 않는 부산 지역 대학교가 나아갈 길을 물어보는 것 자체가 성립하지 않을지도 모른다.

한때 한국 사회에서 불온서적으로 금서가 되었지만 7080세대에게는 필독 도서였던 E.H.카의 ‘역사란 무엇인가’에서 던진 명제, ‘역사란 과거와 현재 사이의 끊임없는 대화이다’를 되새긴다. 부산 지역 대학과 그 구성원은 어떠하였는가? 현재는 어떤가? 여행은 가끔 과거를 돌아보게 하고 질문을 던지게 하고 스스로를 부끄러워하게 하곤 한다.

민병욱 부산대 국어교육과 교수 bmw@pusan.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