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업체서 세금계산서 발행 돈세탁”
- 故 손현욱 교수 유족, 경찰 고발
- 조직위는 작품 철거 시도도

바다미술제를 주최하는 부산비엔날레 조직위원회의 고위급 인사가 조각가에게 지급된 작품 보수비용을 돈세탁을 거쳐 횡령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고 손현욱 동아대 교수의 유작인 ‘배변의 기술’. 국제신문DB

19일 고 손현욱 동아대 교수의 유족과 미술계에 따르면 부산비엔날레는 2015년 9월 19일부터 10월 18일까지 다대포해수욕장에서 바다미술제를 개최했다.

부산비엔날레는 그해 12월 손 교수와 또 다른 작가 B 씨에게 작품 유지보수 명목으로 800만 원씩 총 1600만 원을 지원했다. 당시 바다미술제는 16개국 34개 작품이 전시됐는데 유지보수비는 2명에게만 돌아갔다. 취재진의 확인 결과 부산비엔날레 측이 작가에게 보수비용을 준 경우는 이때가 유일했다. 손 교수의 출품작은 지금도 다대포에 전시되고 있는 ‘배변의 기술’이다.

손 교수의 유족들은 “1600만 원 중 1400만 원이 작품 보수에 쓰이지 않고 부산비엔날레 고위 인사인 A 씨의 수중에 들어갔다”고 주장했다. 손 교수와 B 씨가 작품 유지보수업체에 세금계산서 발행 명목으로 100만 원씩을 주고 나머지 1400만 원은 A 씨에게 줬다는 것이다. 유족들은 당시 B 씨가 손 교수와 같은 방법으로 돈을 마련해 A 씨에게 전달했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손 교수와 유지보수계약을 맺은 C 씨는 유족들에게 ‘2015년 12월 31일 오후 1시 손현욱의 부탁으로 800만 원 가운데 세금을 제외한 700만 원을 B 씨에게 줬다(중략). 작품 유지보수에 관한 어떤 행위도 하지 않았다’는 내용의 사실확인서를 써줬다. C 씨는 취재진과의 통화에서 “사실 확인서를 써준 게 맞다”고 말했다.

문제는 B 씨가 손 교수와 자신에게 지급된 유지보수비를 실제로 A 씨에게 건넸느냐는 것이다. 유족들은 “지난달 B 씨를 만났더니 ‘2015년 12월 31일 저녁 A 씨의 자택을 방문해 현금(1400만 원)을 직접 전달했다’고 말했다. A 씨가 전례에도 없던 작품 유지비용을 지급했다가 되돌려 받은 건 아닌지 의심이 든다”면서 지난 18일 부산 사하경찰서에 고발장을 접수했다.

A 씨는 기자와의 통화에서 “금시초문이다.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아봐야겠다”며 횡령 의혹을 강하게 부인했다. 돈 전달자로 지목된 B 씨는 “부산비엔날레 측에서 돈(유지보수비용)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면서도 A 씨에게 돈을 건넨 의혹에 대해서는 “지금은 할 말이 없다. 경찰이 부르면 수사에 성실히 응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부산비엔날레의 한 간부는 “A 씨가 두 작가에게만 유지 보수 비용을 지급하라고 지시한 것으로 안다. 내막은 우리도 정확히 모른다”고 말했다.

앞서 부산비엔날레는 손 교수의 유작인 ‘배변의 기술’을 철거하려 했다. 장기간 바닷물과 바닷바람에 노출돼 부식이 심해지자 사하구가 철거를 요청했다는 게 이유였다. 그러나 사하구 담당자는 “부산비엔날레 측이 작품을 철거하기로 계획을 세웠다는 내용을 통보받은 적이 있다. 우리가 철거를 요구한 적이 없다”고 반박했다.

부산의 한 작가는 “조각품은 작가의 영혼이나 다름없다. 갑자기 고인의 유작을 왜 철거하려 했는지 모르겠다. 미술계 내에서 영향력이 상당한 A 씨의 입김이 작용했다는 의심이 든다”고 말했다.

고발장을 검토한 경찰은 “유족의 고발 내용이 상당히 구체적이다. 접수된 고발장 내용을 바탕으로 금융거래 내역을 조사하고 참고인과 피고발인을 소환해 조사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한편 유족들은 지난해 6월 손 교수가 학내 성추행 누명을 쓰고 스스로 목숨을 끊자 9개월 동안 사건을 추적해 지난 3월 ‘성추행 의혹이 사실무근임’을 밝혀냈다. 이와 함께 당시 일각에서 손 교수와 관련한 공금횡령 의혹이 제기됐던 사실을 알고 또다시 관련 자료 및 주변인들을 찾아 손 교수 죽음의 원인을 파헤치고 있다.

김봉기 기자 superch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