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매년 한국의 3배 2000ｔ 발생
- 1982년 네바다주에 건설 결정
- 지역 반발에 28년 만에 백지화

- 오바마 정부 ‘블루리본’ 구성
- 전국 돌면서 의견 적극적 수렴
- 처분장 추진 핀란드 등도 방문
- 입지 선정·검증 등 8개안 권고

우리 정부는 신고리5·6호기 공론화위원회 활동이 끝나는 대로 제2기 사용후핵연료 공론화위원회를 구성한다. 사용후핵연료는 원자력발전소의 연료로 소모된 폐연료봉을 말한다. 방사능 물질을 없애려면 지하 깊숙이 묻어 10만 년 이상 보관해야 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폐연료봉을 발전소 내부 수조에 임시 보관(습식저장)하고 있다. 2015년 기준 1만4000ｔ의 폐연료가 저장돼 있다. 매년 750ｔ이 새로 발생해 2019년이면 월성원자력본부부터 사용후핵연료 저장조가 포화상태가 된다. 현재는 저장용량의 83.5%가 찼다.

그러나 폐연료봉을 영구 보관할 고준위방사성폐기물처리장은 아직 입지조차 선정되지 않았다. 2013년 출범한 제1기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는 제대로 된 성과물을 내놓지 못하고 10개월 활동을 마쳤다. 정부는 영구 처분장 논의가 지지부진하자 가동 중단한 고리1호기의 폐연료봉을 30~50년 임시 보관하는 건식저장 시설을 추진하다 지역사회의 반발에 부딪혔다.

미국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미국에서는 연간 2000ｔ에 달하는 폐연료봉이 발생한다. 누적량은 7만~8만ｔ정도일 것으로 추산되는데 아직 영구처분장 입지가 결정되지 않은 상태다.

지난 11일(현지시간) 부산시 원자력안전위원회 위원 등이 미국 연방정부 에너지부 관계자들과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 구성과 운영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김준용 기자

■지역 수용성 높이는 미국

미국은 1982년 방사성폐기물정책법을 제정해 네바다주 유카 마운틴을 사용후핵연료 영구처리시설 입지로 결정했다. 늦어도 2020년까지 영구처리장 완공이 목표였다. 현재 유카 마운틴에는 5마일 길이의 터널도 뚫려 있다. 영구처분장 기능을 하려면 앞으로 40마일 이상의 터널과 철길을 추가로 건설해야 한다.

오바마 정부는 취임하자마자 유카 마운틴 프로젝트를 백지화했다. 지역사회의 반발이 가장 큰 이유였다. 유카 마운틴 아래에 활성단층이 있어 영구처분장으로 부적합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미국 전역에서 폐연료봉이 수송되는 과정에서 대형사고가 날 가능성이 크다는 주장도 있었다.

2010년 오바마 정부는 ‘미국 원자력 미래를 위한 블루리본 위원회’를 구성했다. 폐연료봉 처분장 건설을 위해 만들어진 특별위원회였다. 원자력·산업·정치권에서 15명이 위원으로 위촉됐다. 미 하원과 대통령 국가안보 보좌관 출신이 공동 대표를 맡았다.

2년간의 활동을 마친 블루리본은 8가지 권고사항을 발표했다. 2013년 미국 에너지부는 블루리본의 권고사항을 기초로 한 ‘사용후핵연료 및 고준위 방사성 폐기물의 관리 및 처분 전략’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2021년까지 시험적 중간저장 시설의 부지를 선정하는 것이었다. 또 2025년까지 충분한 용량을 갖춘 중간 저장시설의 인허가를 추진하고 2028년까지 영구처리시설의 입지 선정과 타당성을 검증한다는 내용이었다.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대표는 “블루리본은 폐연료봉 처분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했다”고 평가했다.

■공론위와 블루리본 차이는

미국 네바다 주의 유카 마운틴 내 지하 실험시설. 미국에너지부(DOE)제공

우리나라의 제1기 사용후핵연료공론화위는 실패한 것으로 평가받는다. 당시 지역별 공청회 일정조차 주민들에게 제대로 공지하지 않아 반발을 사기도 했다. 공론화가 ‘소통을 통한 합리적 결정 도출’을 목표로 한다면 이미 공론화 과정에서 문제가 생긴 것이다. 당시 시민사회의 대표가 공론위 참가를 취소하는 사태까지 빚어졌다.

블루리본은 지역의 의견에 초점을 맞췄다. 블루리본 위원들은 미국은 물론 영구처분장 건설이 추진 중인 핀란드·스웨덴을 직접 방문했다. 지역사회의 의견 수렴은 주정부뿐 아니라 카운티까지 진행했다. 당시 아이다호주 미팅에 참여한 한 한국계 인사는 “블루라인은 미국 전역을 돌면서 의견을 모았다. 지역의 동의를 기반(Consent-Based)으로 한 활동이었다. 중앙(연방)정부가 주도했으나 합의 과정에서 지역의 의견이 충분히 수렴됐다”고 말했다.

에너지정의행동 이헌석 대표는 “우리나라는 영구처분장이 아니라 임시 저장시설 설치를 염두에 두고 1기 사용후핵연료 공론화가 진행됐다. 부산 울산의 반발이 심했다”고 말했다.

■정치권력에 흔들리는 유카 마운틴

지난해 당선된 트럼프 대통령은 다시 유카 마운틴 계획을 살리려는 움직임을 보인다. 트럼프 행정부의 릭 페리 에너지부 장관은 지난 1월 청문회 당시 유카 마운틴 프로젝트를 재개할 수 있다고 밝혔다. 블루리본의 활동 결과물이 백지화될 수 있는 상황이다.

이러한 트럼프 행정부의 움직임에 주정부가 연방정부를 상대로 하는 소송까지 진행될 것으로 보인다. 네바다주는 주정부를 상대로 한 법적 대응에 나설 예정이다. 내년에 예정된 중간선거도 변수다. 미국 민주당이 상원과 하원의 과반을 차지한다면 트럼프 행정부의 유카 마운틴 계획 부활에 제동이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경성대 김해창(환경공학과) 교수는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 역시 지역 대표성이 확보되지 않아 좌초 위기를 겪었다”며 “지역사회의 참여를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에너지전환위원회’ 설치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 미국 블루리본위원회의 8가지 권고안

▷방사성폐기물관리시설 부지선정 때 합의를 기반으로 하는 새로운 접근법 채택

▷폐기물 관리 프로그램의 성공적 수행을 위한 전담기구 설립

▷방사성폐기물 관리를 목적으로 원자력 공공요금 납부자가 제공하는 기금의 이용

▷지층 처분시설을 한 곳 이상 개발하기 위한 노력

▷한 개 이상의 집중식 저장시설을 건설하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

▷사용후핵연료 및 고준위폐기물의 운반을 준비하기 위한 즉각적인 조치

▷원자력 기술의 지속적 혁신과 인력 개발을 위한 지원

▷원자력 안전, 핵비확산 및 핵안보 문제의 해결을 위한 국제적 공조에서 미국의 주도적인 역할 강화

※ 자료= 미국의 원자력 미래를 위한 블루리본위원회 최종 보고서

워싱턴DC= 김준용 기자 jykim@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