묵호였던 동해에서 배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로 가서 모스크바까지 기차 타고 간 적이 있다. 9288㎞를 달리는 기차 안에서 일주일이나 먹고 자며 무뚝뚝하면서도 정감 있는 루스키를 많이 만났다.

비창하고 우아한 러시아 음악을 들려준 루스키 뮤지션 차이콥스키(왼쪽)와 빅토르 최.

루스키란 러시아 사람을 뜻하지만 개××란 욕이 있는 코리안에겐 스키가 욕처럼 들린다. 실제로 6·25전쟁 때 소련군을 로스케라고 낮잡아 불렀다.

차이콥스키, 림스키, 무소르그스키, 스트라빈스키 등 저명한 ‘스키’들이 즐비한 러시아는 음악의 나라다. 러시아의 대중음악도 스키의 음악적 DNA를 이어가고 있다. 루스키 고유의 숨결이 있다. 그 결은 가슴에 스며드는 슬픔인 애수보다 더한 슬픔이 뼈저리게 사무치며 아픈 비창(悲愴)이다. 그러면서도 백조가 호수에서 노니는 모양처럼 우아하기 그지없다. 그 우아함은 단지 감미롭다고 할 수 없는 처연하며 처연한 아름다움이다.

가령 TV 드라마 모래시계의 배경 음악인 ‘백학’은 2차대전 때 숨진 러시아 병사들이 백학이 되어 조국으로 돌아온다는 노래다. 어찌 비창하며 우아하지 않을 수 있나.

우리 한민족의 한(恨)이 러시아 음악의 비창·우아를 만나면 어찌 들릴까. 한국인 아버지와 러시아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빅토르 최는 우울하면서도 우아한 노래로 자유 의지 철학을 맘껏 펼치다 요절한 루스키 로커였다.

그가 부른 ‘혈액형’을 들으면 처연한 감정의 물결이 일며 비창하면서 우아한 세계로 빨려들 듯하다. 요즘도 멋진 루스키 음악이 많을 텐데 세상의 글로벌화로 오히려 좁아진 관심 탓에 좀처럼 들리질 않는다.

박기철 경성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