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후아파트 관리비 인상 꺼려
- 임금 인상분 맞추기 어렵자
- 근무시간 줄이기 편법 속출
- 별도 공간 없이 휴식 30분 늘려

- 명지신도시 아파트 9곳 중 6곳
- 휴식시간 연장… 1곳은 2명 감축
- 입사한 달에 인상분 적용 수법도

- 입주민들 고통 분담 자세 절실
- 사업장 관리감독 강화 목소리 커

아파트 경비원이 최저임금 인상의 역풍을 온몸으로 맞고 있다. 노조는커녕 조직된 단체조차 없는 고령의 경비원들은 해고와 꼼수 임금에 속수무책이다. 어렵게 얻은 일자리를 뺏길까 두려워 항의할 엄두도 내지 못한다.

	아파트 경비원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해고의 위협을 받는 데다 휴식시간이 늘면서 실제 임금 인상 효과도 누리지 못하고 있다. 11일 부산의 한 아파트 경비원이 업무를 보고 있다. 곽재훈 전문기자 kwakjhj@kookje.co.kr

11일 낮 12시 부산 사상구 모라동 한 아파트 정문 경비실. 입주민들은 택배 등 10분 간격으로 경비원 A 씨를 찾았다. A 씨는 밥을 먹다 수저를 내려놓고 입주민 요구를 들어주느라 쉴 새 없이 움직였다. 오전 11시부터 오후 1시까지는 그에게 허락된 공식 휴식시간이다. 올해부터 오른 최저임금으로 A 씨의 하루 휴식시간은 지난해 5시간30분에서 6시간으로 30분 늘었다. 아파트 측이 임금 인상분을 맞추기 어려워 휴식시간을 늘린 것이다. 하지만 별도 공간이 없는 탓에 제대로 된 휴식이 아니다. 약 5㎡인 경비실 안에 작은 간이침대를 펴면 좁은 공간이 꽉 찬다. 책상과 의자, 소형TV가 전부인 이곳에서 A 씨는 24시간을 보내며 의식주를 해결한다. 이처럼 사실상 24시간 근무하지만 실제론 휴식시간 외 임금만 받는다. 나머지 시간은 무급으로 일하는 셈이다. 이렇게 해서 받는 월급은 150만 원 남짓. 이마저도 받기 위해선 묵묵히 일하는 수밖에 없다. 불만은 사치다. A 씨는 “행여나 입주민들에게 잘못 보이면 해고될 수도 있는데 불만을 터뜨릴 여유가 없다”고 말했다.

A 씨가 일하는 아파트처럼 부산지역 다수 아파트는 최저임금 인상 부담을 줄이려고 휴식시간을 늘리거나 경비원을 해고한다. 강서구 명지국제신도시 아파트 9곳 중 6곳은 올해 경비원들의 휴식시간을 늘렸다. 1곳은 경비원 2명을 감축하기로 결정했다. 북구의 B 아파트 역시 오는 3월부터는 경비원 1명과 청소원 1명을 줄일 예정이다. 이곳 아파트 관리소장은 “아파트 예산은 한정돼 있는데 최저임금은 올라 부득이하게 7명이던 경비원을 6명으로 줄이기로 했다”고 말했다.

최저임금 인상분을 꼼수로 적용하는 곳도 있다. 부산 남구의 C 아파트는 올해 1월부터가 아닌 경비원들이 입사한 달에 임금을 월 10만 원씩 올리기로 했다. 이 아파트 관계자는 “기초생활수급자인 경비원이 있다. 임금을 많이 주면 수급자 자격을 박탈당한다”고 말했다.

부산아파트 연합회 주용우 사무국장은 “오래된 아파트는 하자 보수비 등 입주민이 부담해야 할 게 많은데 최저시급 인상분마저 감당하려면 근무형태를 유연하게 적용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일부 경비원은 열악한 근무 환경에 입주민 갑질까지 겪고 있다. 최근 부산진구 D 아파트에서는 한 입주민이 “현관 앞에서 양손에 짐을 들고 있을 때 경비원이 입구 문을 열어주지 않는다”는 민원을 제기해 아파트 측이 “경비원 교육을 잘 시키겠다”고 답변하면서 SNS를 중심으로 공분이 일었다.

민주노총 천연옥 비정규위원장은 “노후에 용돈벌이라도 하려는 노인이 경비원직에 비교적 쉽게 접근할 수 있는 직종 특성상 해고하더라도 인력 수급이 쉽다”며 “경비원의 대항력이 약하다 보니 이들이 주로 최저임금 인상의 피해자가 된다”고 말했다. 부산대 신원철(사회학과) 교수는 “시나 노동 당국은 경비원들의 권익을 보호할 수 있는 최소한의 견제기구를 마련하고, 꼼수 근무 적용 사업장의 근로감독을 강화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준영 기자 lj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