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두 고교생 자녀 둔 평범한 아빠
- 조선업 불황으로 실직자 신세
- 원룸 생활하며 채무 허덕이다
- 하지 말아야 할 강도짓 선택

지난 18일 울산에서 발생한 새마을금고 복면 강도사건(본지 19일 자 8면 보도)은 조선 불황으로 실직한 평범한 40대 가장이 극단적 선택을 하는 과정을 잘 보여줘 안타까움을 더해준다.

19일 이 사건을 수사 중인 울산 동부경찰서에 따르면 지난 18일 오전 울산 동구 일산새마을금고 방어지점에서 발생한 강도사건의 피의자 A(49) 씨는 이전까지만 해도 두 명의 고교생 자녀를 둔 평범한 가장이었다. 12년 전 경남 거제의 조선소에서 속칭 ‘물량팀’으로 불리는 일용직 근로자로 근무하다 부상을 당하는 악재 속에서도 항상 성실하면서도 꿋꿋하게 일해왔다.

그러던 중 국내 조선산업이 호황기에 접어들면서 그에게도 울산에서 일자리 제의가 들어왔다. 제법 탄탄한 대기업 협력업체의 정규 생산직이라 흔쾌히 응했다. 그동안 떠돌던 일용직과는 보수나 안정성 면에서 비교가 되지 않았다. 비록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기러기 아빠 신세지만 보람을 느꼈다. 하지만 전 세계적인 조선경기 불황은 그에게 시련으로 다가왔다. 일감이 서서히 줄더니 어느새 구조조정 말이 사내에 돌기 시작했다.

먼저 급여부터 반 토막 났다. 자녀 양육비와 생활비는 갈수록 느는데 수익이 급감하자 A 씨는 우선 급한 대로 3600만 원을 대출했다. 친구들에게도 돈을 빌렸다. 급기야 아내와도 불가피하게 이혼을 했다. 회사도 더는 버티지 못하고 결국 지난해 11월 폐업했다. A 씨에게 제공했던 원룸의 보증금도 빼 가 버렸다.A 씨는 하루아침에 실직하고 묵을 곳조차도 없는 설상가상의 신세로 전락하고 만 것이다. 실업급여를 신청할까 고민했으나 그 정도로는 빚 갚는 데는 물론 양육비와 생활비에 턱없이 부족했다.

결국 A 씨는 극단적인 선택을 했다. 평소 집 가까이에 있어 자주 이용했던 새마을금고를 털 결심을 했다. 그는 지난 18일 아침 이른 시간에 새마을금고 뒤 화장실에 숨어 있다가 때마침 출근 중이던 직원을 흉기로 위협해 은행에 침입한 뒤 현금 1억1000만 원을 털어 경남 거제로 달아났다. 하지만 CCTV 추적 등으로 도주로가 경찰에 파악돼 범행 6시간30분 만에 한 모텔에서 검거됐다. 경찰은 현재 A 씨를 특수강도 혐의로 조사 중이며 곧 구속영장을 신청할 예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평범한 한 가장이 경기불황의 파고에 휩쓸리면서 원치 않은 인생유전을 겪게 돼 안타깝다”며 “비슷한 사건이 발생하지 않기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경기가 회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방종근 기자 jgba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