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성 한달 만에 주변 꽁초·오물
- 스웨덴 한국전쟁 참전기념비도
- 구청·시민 외면 속 방치된 상태
- 근대 역사 상징물 관심가져야
도심 한복판에 놓여 격동의 부산 근현대를 기념하는 조형물이 신음하고 있다. ‘국제시장’이나 ‘1987’ 등 이 시기를 배경으로 만든 영화는 흥행 가도를 달리지만, 정작 잊지 말아야 할 역사적 사실을 기리는 이들 조형물은 오물과 무관심 속에 놓여 있다.
| |  |
| 한 시민이 22일 부산 부산진구 롯데백화점 인근 오월걸상에 앉아 있다. 오월걸상을 설치한 지 한 달이 채 안 됐지만 커피용 종이컵과 담배꽁초 등으로 지저분하게 돼 황보영국 열사를 기리는 의미가 퇴색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
22일 부산 서면 롯데백화점본점 뒤 쌈지공원. 지난달 28일 5·18기념재단과 오월걸상위원회는 과거 부산상고가 자리했던 이곳에 황보영국 열사를 기리는 ‘오월걸상’을 설치했다. 부산의 노동자인 황보 열사는 1987년 5월 “전두환 독재 타도”를 외치며 이곳에서 분신한 뒤 열흘이 지나지 않아 숨졌다. 이 오월걸상은 황보 열사 같은 이들을 기리려 재단과 위원회가 설치한 것으로 전국에서 처음 이 자리에 자리 잡았다.
하지만 현실은 달랐다. 설치한 지 한 달도 안 됐지만 오월걸상에는 시민의 따스한 손길이 아니라 커피나 침 같은 오물이 묻었다. 오월걸상이 놓인 쌈지공원은 서면에서 드문 흡연 장소다. 음료를 든 채 담배를 피우는 이들로 항상 붐비지만 오월걸상에 새겨진 문구와 판화에 관심을 두는 이는 거의 없었다. “돌의자를 설치한 줄 알았는데, 그런 의미가 있는지는 몰랐네요.” 취재진 질문에 한 시민이 가볍게 답하며 떨어낸 담뱃재가 오월걸상 위로 튀었다.
백화점 정문 부근에 자리한 스웨덴 참전기념비도 비슷한 신세다. 6·25 전쟁 때 스웨덴은 의료 인력을 파견해 당시 부산상고 자리에 야전병원을 세웠다. 이후 지금의 부경대 쪽으로 자리를 옮겨 1957년까지 머무르는 동안 200만 명 넘는 민간인과 군인이 이곳에서 치료를 받았다.
1970년 스웨덴-한국협회가 이런 사실을 기리려고 야전병원이 처음 있던 이곳에 기념비를 세웠다. 하지만 인근에 번화가가 조성되며 기념비는 취객의 구토나 노상방뇨에 시달리기 일쑤다. 결국 이를 막기 위한 울타리가 설치됐다. 부산진구의 한 공무원은 “십 오륙 년 전까지는 6월이면 지자체 차원에서 스웨덴 의료 인력 파견을 기리는 행사를 열었지만 지금은 진행하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오월걸상을 설치한 5·18기념재단 측도 이런 현실에 안타까움을 표했다. 재단 이기봉 사무처장은 “5·18의 진상 규명을 요구하며 희생한 분이 많지만 그 아픔과 정신을 충분히 기리지 못했다는 반성에서 시작된 것이 오월걸상 설치 사업”이라며 “이 가운데 황보 열사의 오월걸상은 가장 먼저 설치돼 상징적 의미가 크다. 지역 단체의 의견을 모아 오월걸상이 놓인 배경과 의미를 기리는 행사를 열겠다”고 말했다.
김민주 기자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