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애인에 많은 기회 주고
- 끌어안고 싶다는 뜻 담아 ‘다솔’
- 장애인부모회장 주택 무상 제공
- KAI 사회공헌팀 기자재 지원

- 친환경 재료 통해 건강한 빵 생산
- 사천장애인부모회 부회장
- “제빵 통해 자립능력 키웠으면”

“여기서 빵 만드는 일이 제일 좋아요. 오븐에서 노르스름하게 구워져 나오는 빵을 보면 안 먹어도 배가 불러요.”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회공헌팀 회원들이 다솔제과에서 민지(왼쪽 두 번째) 태현(〃 세 번째) 씨와 함께 마늘스틱 빵을 만들고 있다. 이완용 기자

올해 21세의 허태현 씨. 그는 꿈이 있다. 언제일지는 모르지만 빵집을 차리는 게 꿈이다. 오전 7시면 집에서 자전거를 타고 1시간을 달린다. 8시부터는 빵을 만들어야 하기 때문이다. 늦잠 자는 일은 절대 없다. 스스로 일어나 세수하고, 밥 먹고, 옷 챙겨 입고, 그리고는 엄마한테 공손하게 인사까지 하고 집을 나선다. 웬만한 가랑비도, 한겨울 동장군이 기승을 부릴 때도 애오라지 자전거를 탄다. 어쩌다 비가 세차게 내리거나 눈이 오면 엄마가 자동차를 태워주지만 그런 날은 1년에 열흘도 되지 않는다.

태현 씨는 지적장애 3급이다. 지난해 2월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글도 잘 모른다. 그러나 빵 만드는 것만큼은 적극적이어서 누구에게도 지고 싶지 않다. 반죽을 잘해 오븐에 넣어 맛있게 구워져 나오는 빵을 보면 언제나 즐겁다. 184㎝에 99㎏까지 나갔던 그는 이곳에 다니면서 85㎏으로 쏙 빠졌다. 오전 한나절(4시간) 일하기 위해 왕복 2시간 가량을 자전거로 다니니 살이 빠질 수밖에 없다.

	다솔제과에서 만든 마늘스틱 빵

태현 씨는 한 달에 60여만 원 받은 월급 중 50만 원을 저금한다. 휴대전화도 사고 가끔 옷도 사지만 받은 월급 대부분은 모은다. 나중에 빵집을 차려야 하기 때문이다. 태현 씨는 중학교 2학년 때 처음 접한 빵 만드는 일이 너무 좋았다. 요즘도 조리실 내에서 몸을 흔들어가며 신나게 일한다. 꿈이 있으니 일이 즐겁다.

이곳에는 태현 씨만 있는 것이 아니라 서현(21·가명), 채운(21·가명), 광호(25·가명) 씨도 있다. 모두 자폐성 장애나 지적장애가 있는 친구들이다. 지난주에 훈련생으로 들어와 다음 주까지 한시적으로 근무하는 민지(여· 20) 씨도 구슬땀을 흘리며 빵 만들기를 배우고 있다. 이들은 몸은 불편해도 ‘나도 할 수 있다’는 의욕만큼은 남다르다. 비록 하루 4시간씩 최저임금만 받고 일하지만 어엿한 직장인이라는 생각에 당당하다.

태현 씨가 일하는 곳은 경남 사천시 용현면 선진 횟집단지 입구에 있는 다솔제과. 사천시장애인부모회가 운영하는 제과점이다. ‘많이 거느린다’는 뜻의 다솔(多率)이라는 이름도 떳떳하게 사회생활을 하려는 장애인들에게 기회를 주고 그들을 끌어안아 포옹하고 싶은 의미에서 지었다.

장애인 자녀를 둔 부모들이 아이들의 자립을 돕기 위해 행사 때마다 비행기 모형의 즉석 빵을 구워 팔다가 제대로 된 가게를 갖기 위해 이 빵 공장을 차렸다. 문을 열기 전 장애인부모회는 아이들을 걱정하는 마음만 앞섰지 가진 것이 없어 난감했다. 부모가 없는 훗날을 생각해 스스로 살아가는 능력을 키워주고 싶지만 형편이 여의치 않아 망설였다.

그러다가 구세주 한국항공우주산업(KAI) 사회공헌팀을 만났다. 사회공헌팀은 자리를 잡으면 제빵 기자재를 지원해주겠다고 약속했다. 장애인부모회 회장이 자신의 집을 무상으로 내놓으면서 지금의 자리에서 빵 만들기를 시작할 수 있었다. 지난해 여름에는 더운 줄도 모르고 주택을 공장으로 리모델링하는 작업을 했다. KAI 사회공헌팀 나눔봉사단 회원들이 도왔다.

반죽기와 오븐도 사고 제빵사와 직원을 모집해 지난해 7월 드디어 문을 열었다. 재활 의지가 뚜렷하고 빵을 만드는 일을 해낼 수 있을 장애인을 뽑았다.

처음에는 상투과자와 마늘스틱, 못난이쿠키 등 비교적 쉬운 3종만 만들다 이후 비행기 모형 빵인 블랙이글·골든이글 등 2종을 추가했다. 재료는 전문점에서 공급받아 사용하지만 현미쌀과 참다래, 달걀, 마늘 등은 친환경 농산물만 고집한다. 원가가 많이 들어가고 판매량이 적더라도 제대로 된 제품을 생산하겠다는 욕심에서다.

장애인부모회는 제과 판매 수입을 올리겠다는 생각보다는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장애인을 고용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다. 제빵을 통해 스스로 살아가는 방법을 배우기를 바랄 뿐이다.

다솔제과를 운영하는 이채정(여·49) 사천시장애인부모회 부회장은 “돈은 벌지 않아도 좋으니 우리 아이들이 내가 없어도 스스로 자립해서 살 수 있는 그런 세상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이어 “직업 재활을 통해 장애인도 시민의 한 사람으로 당당하게 살아갈 수 있길 바랄 뿐”이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빵 구매나 후원 문의 (055)855-4022, 010-2338-8429

이완용 기자 wylee@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