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입법권 가진 박재호 국회의원과
- ‘도움없이 이동’ 원칙 세워 출발

- 얕은 경사·미세한 틈에 휘청
- 버스도 보도 잇는 판 없어 실패
- 5분 만에 무너진 원칙 땀 뻘뻘

성인 남성은 1분에 50, 60ｍ를 걷는다. 한 시간이면 무리하지 않더라도 3㎞를 걸을 수 있다. 하지만 휠체어를 탄 장애인이라면 어떨까. 국제신문 취재진은 수동 휠체어를 타고 부산 남구 부경대 인근 3㎞ 구간을 2시간여 돌며 장애인이 일상적인 이동 과정에서 겪는 어려움을 체감해봤다.

	더불어민주당 박재호(오른쪽) 의원과 국제신문 김민주 기자가 장애인의 날인 20일 오후 장애인의 불편함을 직접 느끼기 위해 수동 휠체어를 타고 부산 남구 대연동 일대를 돌아다니고 있다. 김종진 기자 kjj1761@kookje.co.kr

남구장애인복지관은 20일 장애 인식 개선 활동의 일환으로 비장애인이 직접 수동 휠체어를 몰아 일대를 돌아볼 수 있는 행사를 마련했다. 기자가 복지관에서 휠체어에 오른 건 이날 오후 1시20분. 손목과 손바닥에 붕대를 감고 그 위로 두툼한 면장갑까지 꼈다. 이날 장애인식 개선 활동에는 지역 국회의원인 더불어민주당 박재호 의원이 함께했다. 복지관은 입법 권한이 있는 국회의원이 장애인의 어려움을 체감해 실태를 개선해주기를 바라며 박 의원에게 참여를 요청했다.

기자와 박 의원은 복지관 직원들의 도움을 받지 않는다는 원칙을 세우고 출발했다. 이동 과정에서 저상버스와 도시철도도 타보기로 했다.

원칙은 출발 5분 만에 무너졌다. 높이 2㎝도 되지 않는 보도의 턱과 얕은 경사 모두 휠체어를 탄 사람에겐 넘기 힘든 벽이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려 얕은 경사길을 내려가던 박 의원의 휠체어가 휘청했다. 내리막을 우회하던 기자의 휠체어는 한 줌도 안 되는 모래 탓에 바퀴가 헛돌며 멈춰섰다. 복지관 직원들이 밀어준 뒤에야 둘 다 횡단보도를 건널 수 있었다. “충격적이네.” 박 의원이 나지막이 이런 말을 내뱉었다.

올곧게 뻗었다고 여긴 부경대 앞 보도는 모두 차도 쪽으로 조금씩 기울어 있었다. 바퀴를 밀면 휠체어는 차도로 향했다. 보도블록 사이의 미세한 틈에도 휠체어는 크게 출렁였다. 결국 기자와 박 의원은 보도 옆을 따라 난 자전거 도로 이용을 택했다. 복지관에서 1.2㎞ 떨어진 부경대 버스 정류소에 도착하는 데 30분 넘는 시간이 걸렸다.

이내 도착한 저상버스가 발판을 내렸지만 둘 다 버스에 탈 수 없었다. 보도와 차도를 잇는 경사로가 없는 탓에 높이 10㎝가 안 돼 보이는 보도의 턱을 내려서지 못해서다. 버스 기사가 내리고, 복지관 직원이 도왔지만 결국 버스를 타는 데 실패했다. 버스에 탄 승객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아야 했다.

지상과 경성·부경대역을 잇는 승강기엔 비장애인들이 몰렸다. 휠체어 두 대는 엘리베이터에 간신히 들어갔다. 역사 내리막의 경사가 급해 급제동을 걸어야 했다. 붕대와 장갑을 했지만 손바닥이 쓰렸다. 대연역에서 내려 복지관으로 돌아오기까지 걸린 시간은 2시간10분. 비장애인의 보도 속도와 견주면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였다. 피로도는 극심했다. 땀이 흥건했다. 버스 탑승과 가게 이용에 모두 실패했다.

“이건 장애인들은 밖에 나오지 말란 것과 같은 이야깁니다.” 박 의원이 밝힌 휠체어 이용 후 느낌이다. 그는 “구 공무원도 직접 휠체어를 타면 문제를 실감할 수 있다. 장애인 입장에서 현황 조사를 벌이고 계획을 작성해 순차적으로 보도의 기울기와 경사로 문제를 바로잡아야 한다. 지역 국회의원으로서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는지 살피겠다”고 말했다.

김민주 기자 min8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