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찰엔 차벽설치 등 대응 요청
- 지자체에 ‘일방적 행정’ 비판

부산 ‘강제징용노동자상’ 설치 문제가 치킨게임으로 치닫고 있다. 부산시민사회단체는 “다음 달 1일 동구 일본영사관 앞 설치를 강행하겠다”고 공언하는 반면, 외교부는 “절대 불가” 입장을 되풀이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외교부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높다. 설치 주체인 시민사회와 갈등을 봉합하려고 노력하지 않고, 부산시 등에 무조건 제막을 막아줄 것만 요구한 뒤 뒷짐을 지는 행보를 보여서다. 외교부는 최근 경찰에 차벽 설치를 요구했다.

적폐청산·사회대개혁 부산운동본부 강제징용노동자상 건립특별위원회 회원들이 24일 오전 부산 동구 초량동 일본총영사관 앞에서 동구가 설치한 대형 화분을 치우고 노동자상 모형을 설치하는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김종진 기자

24일 부산 동구와 경찰 말을 종합하면, 외교부 심의관과 사무관 등 2명이 지난 23일 동구를 방문했다. 이들은 “노동자상을 영사관 아닌 다른 곳에 설치될 수 있게 해달라”며 동구를 또 한 차례 압박했다. 외교부는 또 동부경찰서 경찰관과 만난 자리에서 국내에 주재하는 외교기관의 청사 100ｍ 내 옥외 집회를 불허하는 ‘집회 및 시위에 관한 법률 제11조’를 근거로 “다음 달 1일 노동자상 설치 때 차벽을 설치하는 안 등 강력한 제재 방안을 검토해 달라”고 요청했다.

외교부는 지난해 9월 노동자상 건립을 주도하는 ‘적폐청산 부산운동본부(이하 부산본부)’가 다음 달 1일 제막 계획을 밝힌 뒤 줄곧 이처럼 일방적인 행정을 벌였다는 지적이 나온다. 부산시와 동구 등 행정기관을 압박해 시민사회와 영사관 앞 제막을 막아줄 것을 요구했다. 단 한 차례도 부산본부와는 대화하지 않았다. 부산본부 김재하 상임대표는 “외교부에서 일단 연락이라도 오면 영사관 아닌 다른 곳 설치라도 검토할 것 아니냐. 진정성 있는 모습이 아예 없다”고 지적했다.

행정기관도 불만이다. 동구 관계자는 “중앙부처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을 우리에게 떠넘기는 것인가. 부산본부와 의견을 조율하는 것이 맞지 않느냐”고 볼멘소리를 냈다. 동구는 외교부가 제대로 갈등을 봉합하지 못해 ‘우왕좌왕 행정’을 펼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동구는 환경 정비를 핑계로 지난 20일 영사관 앞에 대형 화분 6개를 설치했다. 부산본부 등 시민사회 반발 여론이 커지자 나흘 만인 24일 화분을 모두 철거했다.

경찰도 딜레마에 빠졌다. 외교부 요구대로 실제 차벽을 설치할 것인지, 100ｍ 내 집회를 불허할지 등을 결정하지 못하고 있다. 부산경찰청과 동부경찰서의 관련 부서는 이날 종일 현 상황에 대한 법률 검토를 벌였다. 경찰 관계자는 “지난해 경찰청 차원에서 차벽과 살수차를 더 배치하지 않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영사관 측이 청사 보호를 요청하면 고민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외교부 관계자는 “노동자상 건립 취지에는 공감한다. 차벽 설치는 경찰과 의견을 교환하던 중 나온 이야기였다. 다른 기관의 업무에 영향을 끼칠 의도는 없다”고 해명했다.

김화영 김민주 기자 min8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