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해운대구 우동의 한 ‘부촌’에 보이스피싱 주의보가 내려졌다. 다른 지역과 달리 고액 현금거래가 많아 은행에서 예방하기 어려운 탓이다.

21일 부산 해운대경찰서와 80대 여성인 A 씨의 말을 종합하면, A 씨는 지난 19일 한 보이스피싱범에게 전화를 받았다. 피싱범은 A 씨에게 자신을 연제경찰서 경찰로 속인 후 신분이 노출됐다며 돈 5000만 원을 요구했다. A 씨가 거부하자 피싱범은 취업 준비생인 손주의 이름을 대며 “할머니가 협조를 거부하면 손주를 소환해 조사하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대학을 막 졸업하고 취업을 준비하던 손주의 이름이 나오는 순간 A 씨는 이성을 잃고 근처 B 은행으로 향했다.

은행 창구에 피싱범이 얘기한 이름의 직원이 앉아 있자 의심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현금 5000만 원의 인출을 요구하자 창구 직원이 용도를 물었다. A 씨는 피싱범이 시킨 대로 “입원비로 필요하다. 치과 치료도 할 거다”고 말했다. 은행 직원은 안내문을 보여주며 “요즘 경찰을 사칭한 보이스피싱이 많다”고 했지만, A 씨는 “아니다. 치료비다”고 재차 말했다. 은행 측은 현금 1900만 원과 수표 3100만 원을 지급했다. A 씨는 인근에서 모자를 눌러 쓴 피싱범을 만나 돈을 건넸다. 피싱범은 현금 1900만 원만 챙기고, 수표 3100만 원은 돌려줬다.

그간 경찰은 은행과의 협조로 적지 않은 보이스피싱 사건을 예방했지만, 우동은 ‘부촌’의 특성상 고액을 현금으로 찾아가는 노인 고객이 많아 예방이 어려운 형편이다. B 은행 관계자는 “다른 영업점에 비해 고액을 현찰로 찾는 경우가 잦다. 또 꼬치꼬치 캐물으면 프라이버시를 침해한다며 고객이 기분 나빠하기도 한다”며 “이번 경우도 자금의 용도를 묻고 보이스피싱을 경고했지만, 고객이 아니라고 하니 방법이 없었다”고 말했다. 경찰 관계자는 “만약 다른 동네였다면 현금 5000만 원을 찾는 경우가 몇 번이나 있겠나. CCTV를 확보한 상태로 적극적인 수사로 보이스피싱범의 뒤를 캐고 있다”고 말했다. 박호걸 기자 rafael@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