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술에 취한 고객 행패부려도 참고
- 규정 어겨도 요구하면 들어줘

- 알바생 10명 중 8명은 “갑질경험”

서울에서 일명 ‘강서구 PC방 살인 사건’이 발생한 후 아르바이트생들이 두려움에 떨고 있다. 고객의 부당한 요구에도 신변 위협에 제대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안전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부산 북구 덕천동 한 PC방에서 아르바이트 중인 김소령(여·22) 씨는 강서구 PC방 사건이 일어난 후 불안하다. 술에 취해 말이 통하지 않는 고객이 요주의 인물이었지만 요즘은 점잖은 고객도 우선 조심하게 된다. 강서구 PC방 사건에서 평범한 차림으로 온 김성수(29) 씨가 1000원을 환급해주지 않는 것에 격분해 살인까지 저지른 만큼 자신도 언제 화를 입을지 몰라 최대한 행동을 조심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한 고객이 술에 취해 게임 프로그램을 제대로 작동하지 못했음에도 실행되지 않는다며 행패를 부려 자리를 바꿔준 뒤 10분간 설명해 준 일도 있었다. 김 씨는 “이번 사건을 보면서 예상치 못한 이유로 한순간 목숨을 잃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며 “화가 나도 일단 고객 요구는 다 들어주려고 한다. 그게 나를 지키는 안전한 방법인 것 같다”고 말했다.

PC방 업주도 고객을 자극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덕천동에서 PC방을 운영 중인 정지훈(33) 씨는 강서구 PC방 사건이 일어난 후 고객 요구사항은 무조건 다 들어주라고 아르바이트생들에게 교육한다. 주변에 술집이 많아 술 취한 고객과 노숙자 때문에 위험하다고 판단한 조처다. 정액요금을 결제한 뒤에는 원래 환급이 안 되지만 해주기로 했다. 철저히 ‘을’이 되기로 한 대신 안전을 지키고 나선 것이다.

정 씨는 “환불은 매니저 이상에게만 권한이 있지만 우선 손님이 요구하면 들어주라고 했다”며 “‘갑질’하는 고객도 간혹 있고 아르바이트생들이 불안을 호소해 내가 PC방 자리를 지키는 때가 많다”고 말했다.

아르바이트생들이 고객에게 갑질을 당하는 일은 다반사다. 취업포털 잡코리아가 최근 아르바이트생 1106명을 대상으로 ‘갑질 경험 설문조사’를 한 결과 81.0%가 ‘갑질 당했다’고 응답했다. 갑질 유형은 반말 등 인격 무시(57.1%), 불합리한 요구 및 부당 지시(47.7%), 이유 없는 화풀이(47.2%), 무조건적 친절 강요(40.7%)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지난 1일 오후에는 북구 한 스포츠용품 매장에서 지난해 구입한 운동화를 교환해달라고 요구했으나 아르바이트생이 이를 거절하자 카운터 위 안내판을 들어 협박하고 30분간 욕설한 A(61) 씨가 경찰에 붙잡히기도 했다.

이처럼 아르바이트생들이 열악한 근무 환경에 노출돼 있지만 강서구 PC방 사건과 같은 유형의 사건이 다시 일어나도 예방하기 힘들다. 경찰 관계자는 “PC방에서 살인 사건이 있었다고 해 그곳까지 순찰을 강화하기는 힘들다”고 말했다.

청년유니온 하정은 위원장은 “아르바이트생들은 낮은 임금과 위험한 환경에 시달리면서 인격 모독까지 견뎌야 할 때가 많다”며 “이들을 분노 표출의 대상이 아닌 약자로 대하는 인식 변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준영 기자 ljy@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