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앞집 어르신 고관절 수술 병문안
- 뒷집 아저씨네 막내아들 결혼식
- 옆집 할머니 마지막 가는 길까지
- 이웃사촌의 일 자기 일처럼 챙겨
- 주민들 따뜻한 배려심 있기에 가능

- 귀촌 후 원주민들과 어울리기 위해
- 사교성 부족하고 언변 없지만
- 진심으로 공경하며 진정성 보여
- 적극적인 태도로 먼저 다가가길

“명자 파이팅!”. 각 마을에서 출전한 여자씨름 선수들의 경기가 한창이다. “안다리!” “배로 밀어!”. 응원하는 소리가 여기저기서 시끄러울 정도다. “하하하 …”. 덩치 큰 여자가 비쩍 마른 여자에게 맥없이 넘어가자 웃음소리가 사방에서 들렸다. 지난 15일 열린 ‘제18회 화개면민의 날’ 및 ‘제26회 면민체육대회’에서 마을별 여자씨름 경기의 한 장면이다.

	목압마을에는 필자와 같은 귀촌인들도 마을사람들과 수시로 잘 어울려 소위 왕따가 없다. 한 주민의 집에서 마을사람들이 모여 담소를 나누고 있다.

오전 10시 개회식을 시작으로 어둑할 때까지 체육대회가 이어졌다. 화개골 할머니들의 댄스공연, 쌍계초등 학생들의 사물놀이, 여자씨름·줄넘기·줄다리기·릴레이경기, 마을별 노래자랑대회 등이 연이어 펼쳐졌다.

체육대회 후 필자가 사는 목압마을 주민들은 모두 마을회관으로 이동해 뒤풀이 겸 저녁을 먹었다. 체육대회를 복기하며 재밌게 얘기를 하다 최동환(57) 이장이 이날 경상대병원에서 고관절 수술을 한 마을의 이승우(78) 어르신에 대한 소식을 전했다. “오늘 수술을 하셨다. 단체로 가든 개별 병문안을 하든 가보시는 게 좋겠다”며 “가능하면 한 집도 빠지지 않도록 합시다”라고 하자 모두 “당연히 그래야지”라고 응답했다.

	마을주민들이 이기송 씨의 집 넝쿨을 함께 걷어내고 있다.

목압마을에는 맥전부락까지 합치면 40가구가 살고 있다. 90대의 어르신들이 여러 분 계시고 80대까지는 젊은이처럼 일할 정도로 건장하다. 수술한 이승우 어르신도 밭일과 녹차 일까지 다 하며, 틈틈이 소위 ‘노가다’도 하신다. 필자가 마을에서 가장 젊은 축에 든다.

맥전부락에서 민박를 하며 녹차농사도 짓는 최 이장은 부지런하고 인정이 참 많다. 바쁜 와중에도 주민들을 한 사람도 빼놓지 않고 챙긴다. 며칠 전에는 필자의 예초기가 시동이 걸리지 않아 마당에서 한참동안 씨름하고 있자 지나가다 들어와 거의 분해하다시피 해 고쳐줬다.

지난해 봄 이사 온 필자는 한 번도 차별을 받은 적이 없다. 원래 이곳에서 태어나 여태까지 살아온 것처럼 자연스럽다. 어르신들이 인정이 아주 많으시고 성격이 별난 분은 한 분도 안 계신다. 필자는 대학 때부터 목압마을을 거쳐 국사암과 불일폭포, 삼신봉을 다녔기 때문에 정서적으로, 내면적으로 이곳이 고향이나 다름없다. 그러한 데는 기본적으로 마을주민들의 따뜻한 마음과 배려심이 있기에 가능했다.

필자는 특별한 일이 없으면 마을 행사나 일에 빠지지 않는다. 주민으로서의 의무를 다하는 것이다. 지난 가을 서울에서 김갑덕(64) 씨의 막내아들 결혼식이 있었다. 관광버스 한 대가 출발했는데, 좌석이 모자랄 정도였다. 돌아올 때 버스 안은 행복지수가 너무 높았다. 70대는 물론 80대 할머니들도 평소 “아이고 허리야!” 하시던 분들이 모두 일어나 노래를 부르며 율동을 하는데 필자도 덩달아 기분이 좋아 도착할 때까지 웃고 또 웃었다.

	필자가 마을에서 주민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겨울에는 필자의 바로 윗집인 단골민박집의 권경란(92) 할머니가 별세해 구례병원 장례식장에서 상을 치렀다. 필자를 포함한 마을주민들 모두 빈소에 들러 애도했다. 전남이 고향인 할머니는 자개농 사업을 하던 할아버지와 이 마을로 들어와 자식 아홉을 낳아 키웠다. 평소 책읽기를 좋아한 할머니는 늘 조용하고 매사 조심스럽게 생활해 마을분들이 하나같이 “좋은 곳으로 가셨을 것”이라고 입을 모으셨다.

목압마을회관은 그야말로 동네 사랑방이다. 어느 집에 좋은 일이 있으면 회관에 모여 축하해주고, 특별한 먹을거리가 생기면 이장님의 방송을 통해 두 참석하도록 해 나눠먹는다.

한 번은 이런 일도 있었다. 지난 겨울 멧돼지가 밭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쳐놓은 그물에 걸려 죽어있자 마을에서 삶아 마을회관에 모두 모여 나눠 먹었다. 그렇게 음식을 함께 먹으면서 마을 현안은 물론 자그마한 일까지 상의를 하고 같이 고민을 한다.

마을회관 바로 건너 살고 있는 이기송(60) 씨가 “대문과 지붕에까지 우거진 넝쿨을 혼자 제거하는 게 쉽지 않다”고 하자 60대 주민들까지 낫과 톱을 들고 모여 금세 집이 말끔해졌다. 이걸 핑계 삼아 마을사람들은 또 모여 저녁을 먹기도 했다.

목압마을의 이러한 인정스러움과 이웃을 챙겨주는 분위기에 대해 이용우(62) 전 화개면장은 “목압마을은 그다지 큰 마을은 아니지만 오래전부터 주민들의 성품이 좋다”며 “화개면의 20개 마을 중 가장 평화롭고 행복한 마을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 맨 앞줄에 설 것”이라고 말했다.

마을을 오가다 어느 집에서 고추를 손질하고 있거나 농작물을 다듬고 있으면 필자는 들어가 얘기를 나누며 함께 김장고추 꼭지를 따거나 무거운 물건을 들어드리는 등 일을 거든다. 특히 할머니 혼자인 댁은 일부러라도 말벗이 되어드린다. 특히 필자는 오래 된 똥차(?)가 있어 어르신들의 발 노릇을 해주려고 애를 쓴다. 고 권경란 할머니를 보건소에 모셔드린 적이 있고, 화개나 하동에 가려고 버스를 기다리시는 분이 계시면 먼저 모셔드린 다음 일을 본다. 구례장에 갔다 올 때도 버스정류장에 마을 분이 계시는지 확인해 함께 모셔온다. 그러한 것을 아는 이장님은 마을사람들이 이동할 일이 있으면 필자에게 함께 모시고 가자고 한다. 이번 체육대회 때도 그랬다. 어르신들은 “현일이 아부지 덕에 우리가 편하게 다닌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덕분에 필자의 집에는 상추 고추 버섯 등이 떨어지지 않는다.

가끔 귀촌했다가 주민들과 화합하지 못해 다시 도회지로 나가는 사람들 얘기를 들으면 안타까운 마음이 든다. 마을의 원주민들도 좋아야 되지만, 귀촌한 분들도 마을주민이라는 진정성을 보여야 한다고 생각한다. 사람은 상대적이다. 필자는 사교성이 부족하고 언변이 없어 말이 그다지 많지 않은 편이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과 쉽게 섞이지 못한다. 하지만 마을주민들이 대부분 어르신이어서 그분들을 진심으로 공경하게 대한다. 필자는 어머니가 생존해 계시기 때문에 어른들 대하는 게 친숙하다. 그래서 그분들의 외로움이 어떤 것인지 나름 알고 있다.

얼마 전 창원에 산다는 이승우 어르신의 큰 아들이 부모님을 뵈러 왔다가 필자를 만나 이런 얘기를 했다. “자식인 저도 부모님을 자주 찾아뵙지 못하고 늘 챙겨드리지 못하는데 정말 감사하다”고 했다. 필자가 “당치도 않은 말씀입니다. 오다가다 만나면 안부를 여쭙고 염려해주는 정도인데요”라고 말하자 “어르신들의 말벗이 되어 주는 일을 아무나 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고맙다는 것입니다”라고 했다.

목압마을에 살면서 항상 느끼는 생각이 있다. ‘가까운 친인척보다 이웃사촌이 더 중요하다’는 말이다. 저녁 먹고 바람 쐬러 나갔다가 앞집에 들러 차 한 잔 마시면서 두 시간 가까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방금 들어왔다. 앞집 아저씨가 말했다. “앞집 뒷집 우리 살 때까지는 지금처럼 인정 있게 삽시다.”

시인·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