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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촌 <2-4> 조해훈의 귀농이야기- 주민들과 지리산 산행

아픈 나를 부축해 지리산 오른 주민들 … 동지애 속에 情 피어나다

  • 국제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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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  입력 : 2018-11-04 19:03:21
  •  |  본지 11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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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벽소령·만복대·노고단 등 오를 때
- 불평 한마디 없이 배려와 격려
- 이웃사촌에게 고마움 넘어 감동
- 동행길 고생 속에 친밀감 더해져

- 펜션 등 지어 들어오는 귀농인들
- 개량한복 입고 수염·머리 기른다고
- 원주민의 삶에 녹아들 수 없어
- 살 맞대고 동고동락해야 동질감

양팔을 벌려 안으면 품에 들어올 듯 반야봉이 둥그스름하게 있고, 그 어깨 너머로 천왕봉이 시커멓게 보인다. 노고단 정상에 서 있다. 사방에 만추의 단풍 물결이 넘실거린다. 해발 1507m. 지리산 10경 중 3경인 노고단 운해에 파묻히면 신선계를 넘어 천상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이 든다. 특히 저 아래 피아골 단풍은 사람의 손으로는 도저히 빚어낼 수 없는 장관이지 않은가.
   
노고단 정상에서 등산객들이 반야봉과 천왕봉을 바라보며 이야기를 하고 있다. 노고단 정상에서는 반야봉이 품에 들어올 듯 둥그스름한 모습으로 보이고, 저 멀리 천왕봉도 눈에 들어온다.
자주 노고단 정상에 올라온다. 정상에 서서 천왕봉 쪽을 바라보면 실타래처럼 늘 복잡하게 얽힌 머리가 다 비워지고 짓눌린 마음이 가벼워진다. 그래서 도시의 친구들이 방문하면 “노고단에 산책하러 가자”며 함께 온다.

동행한 주민들과 피아골로 내려갈 예정이다. 피아골 단풍이 지금 절정이다. 지인들에게 입버릇처럼 “피아골 단풍을 보지 않고 죽으면 억울하니 꼭 보라”고 권한다.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종주계획을 종종 세우지만 아직 실행하지 못했다. 대학생 때부터 화엄사에서 노고단으로 올라와 천왕봉으로 수차례 종주했다. 산청 중산리에서 천왕봉으로 올라가 화엄사나 피아골로 내려가기도 하였다. 심지어 노고단을 거쳐 만복대로에 가 구례 산동으로 하산하기도 했다.

필자가 하동 화개면 맥전길 4(목압마을)로 들어온 이유 중 하나가 지리산 골짝을 자주 타기 위해서다. 하지만 심장이 좋지 않아 동행한 벗들이 주능선에 올라서면 필자는 반도 오르지 못한다. 숨이 가빠지고 다리가 풀리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마을 주민과 벽소령(1350m)에 오를 때도 그랬다. 의신마을에서 차로 삼정마을로 이동해 그곳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등산스틱을 짚고도 몇 발짝 올라가다 쉬기를 반복했다. 주민 한 사람이 산행은 포기한 채 작정하고 필자의 뒤에서 도와줬다. 그렇게 해서 정상인 벽소령대피소 앞에 서니 눈물이 핑 돌았다. 정말 오랜만에 지리산 주능선에 올라선 감격도 있지만 몸이 망가진 데 대한 회한이랄까.

지난해 봄 지리산에 들어온 이후 처음 주능선에 발을 디뎠다. 한창 지리산에 다닐 때는 의신에서 벽소령으로 걸어올라도 힘든 줄 몰랐다. 필자 일행은 벽소령대피소에서 빵과 우유를 사 먹으며 한참 앉았다가 왔던 길로 되돌아 내려왔다. 주민들이 필자를 배려해준 산행이었다.

지리산 10경 중 제5경인 벽소령은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 지리산 종주코스의 가운데쯤에 자리한다. 벽소령(碧宵嶺)의 달빛이 희고 맑아 푸르게 보인다고 하여 그렇게 불리고 있다. 벽소령대피소에서 올라온 반대쪽으로 7㎞가량 걸어 내려가면 음정마을(경남 함양군 마천면 삼정리)에 다다른다.

   
만복대에서 주민들과 눈꽃을 보며 즐기고 있는 필자.
벽소령에 오르고 용기를 얻은 필자는 얼마 있다 마을 주민 5명과 눈꽃을 보러 만복대 쪽으로 올라갔다. 주민들은 “지리산 어느 코스를 가든 얼마든지 동행해줄 수 있으니 빨리 건강만 회복하시라”고 격려를 해줬다. 고맙기 짝이 없다.

구례 산동면 상위마을에서 산행을 시작했다. 벽소령 코스보다 조금 더 가팔랐다. 역시 마을의 고법석 씨가 필자의 뒤에서 산행을 도와주었다. 눈꽃과 상고대가 너무 아름다워 사진까지 찍으며 올라갔으니 동행한 주민들에게 이루 말할 수 없는 민폐였다. 그럼에도 핀잔 받지 않고 되레 “몸도 성치 않은데 너무 고생이 많다”고 위로받았다. 마을 주민들은 눈밭 속에서 필자가 올라오기를 기다리다가 라면을 끓여 “많이 드시라”고 해 감동을 받았다.
필자는 ‘목압마을에 참 잘 들어왔다’는 생각을 숱하게 했지만, 이번에는 감동을 넘어 ‘산사람(?)으로서 동지애’마저 느꼈다. 우리는 “빨치산의 동지애가 이러지 않았을까”라고 농담했다. 주민들과 산행을 하면 친숙함이 더 돈독해진다. 산행이라는 힘듦을 함께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지리산은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해준다. 역사나 전설을 새삼 떠올리게 하고,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여정을 돌아보게 한다. 여태까지 이 골짜기 사람들의 삶이란 자연에 거역하지 않는 순응이었다. 요즘 새로이 펜션이나 지어 들어오는 일부 도시 퇴직자는 원주민과 삶의 형태와 내용, 지리산을 대하는 태도 모두 다르다. 개량한복을 입거나, 머리를 묶고 수염을 기르거나, 꽁지머리를 한다고 해서 원주민들 삶의 원형질과 같아지는 것은 아니다. 원주민들과 살을 맞대는, 동고동락을 해야 하는 것이다.

   
산행 후 주민들과 식사하고 있는 모습.
노고단에서 이제 피아골로 출발한다. 노고단 고개에서 천왕봉으로 가는 산길을 따라 임걸령을 지나면 이어 피아골 삼거리가 나온다. 여기서 피아골로 길을 잡으면 계속해서 내리막이다. 오솔길에 돌을 깔아놓아 내려가는 길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한참을 내려오면 피아골대피소가 나온다. 능선에서 약 2㎞ 거리다.

그다지 크지 않는 대피소 주변은 온통 붉은 물감을 뿌려놓은 것 같다.

대피소부터는 계곡을 끼고 내려온다. 물소리가 상쾌해 계곡 쪽을 바라보면 바위 사이에 쏟아지듯 흘러내리는 허연 물살에 문득 놀란다. 아마도 단풍과 물의 색상 대비에서 생기는 시각적 차이에서 오는 찰나적 반응일 것이다.

계곡 다리를 건너다 주변을 보면 다른 곳보다 좀 넓은 바위와 소가 있다. 유명한 ‘삼홍소(三紅沼)’다. 세 가지가 붉어 보인다는 비유적 표현의 장소이다. 산이 온통 붉게 물들었다 해서 산홍(山紅)이고, 맑게 흐르는 물에 붉은 단풍이 비쳐 수홍(水紅)이고, 이곳에 든 사람도 붉게 물들어 보인다 해서 인홍(人紅)이다. 얼마나 상징적인가. 남명 조식(1501~1572) 선생이 처음 ‘삼홍소’라는 시에서 그렇게 표현했다.

필자 일행은 뛰다시피 급히 내려가는 청년들을 보면서 “이 계절에 이 골짝 길을 급하게 뛰다시피 내려가는 사람은 어리석다. 주위의 단풍을 감상하면서, 수시로 계곡 바위에 앉아 ‘정말 내 몸이 붉어졌을까’라는 생각도 해가며 느리게 느리게 걸어야 피아골 단풍의 참맛을 느낄 수 있다”라 말을 주고받았다. 부지런한 산꾼이 아니라면 피아골 단풍을 두 번 다시 본다는 게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마음과는 달리 바쁜 일상이 그걸 허용하지 않는다.

지리산 2경이 바로 피아골 단풍이지 않은가. 대피소에서 4㎞ 내려 오니 직전마을에 도착했다. 이 코스에 처음 동행한 주민이 “피아골 입구까지 걸어갑시다”라고 말했다. 필자는 “너무 멀고 포장도로여서 불가능하다”고 양해를 구했다. 붉게 물든 단풍나무 길이어서 만약 걷는다면 대단한 볼거리임에는 틀림없다. 결국 직전마을 천왕봉산장 주차장에서 구례터미널로 가는 버스를 타고 피아골 입구에서 내렸다.

화개로 와 저녁을 먹었다. 이곳 사람들은 대개 술을 곁들인다. 필자가 술을 못 마셔도 억지로 권하는 사람이 없다. 필자의 녹차농사 등에 대한 조언을 해주기도 한다. 처음부터 헤어질 때까지 웃음과 배려의 말이 떠나지 않는다. 주민들과 하루 산행만 해도 이렇게 동지애가 쌓인다.

시인·전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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