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규정 어기고 땅밑 20㎝ 매설”
- 공사 “도시가스법상 문제없어”
- 상위법 따지며 대책 마련 뒷전

부산 해운대구 우동 마린시티에서 발생한 도시가스관 파손 사고(국제신문 지난 11일 자 6면 등 보도)의 원인을 놓고 해운대구와 부산도시가스가 책임 공방을 벌인다. 양측이 서로 다른 법령을 근거로 ‘네 탓 다툼’을 하는 데 열중하느라 정작 사고 재발을 막기 위한 대책 마련은 뒷전으로 밀려난 모양새다.

해운대구는 12일 도시가스관 파손 사고에 대한 자체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앞서 지난 10일 운촌항 회전교차로 신설을 위해 도로를 굴착하는 과정에서 굴착기가 매설된 도시가스관을 터뜨려 가스가 샜다.

해운대구는 “부산도시가스가 규정을 어기고 가스관을 매설해 사고가 났다”고 밝혔다. 해운대구는 부산도시가스가 도로법을 위반하고 지면에서 20㎝ 아래에 가스관을 묻었다고 주장했다. 도로법 시행령 54조 5항은 가스관 등 지하 시설물 매설은 1ｍ 이상 깊이로 해야 하고, 부득이한 경우 30㎝ 깊이까지 가능하다고 명시하고 있다. 부산도시가스가 이 규정을 어겼다는 게 해운대구의 견해다.

그러나 부산도시가스는 도시가스사업법을 근거로 정상적으로 가스관을 매설했다고 반박한다. 도시가스사업법 12조 2항을 보면 ‘지하구조물 등 특수한 사정으로 매설 깊이를 확보할 수 없는 곳에 매설하는 배관은 보호관 또는 보호판으로 보호 조치를 한다. 이때 보호관이나 보호판 외면은 지면·노면과 30㎝ 이상의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부산도시가스는 이 법을 내세워 사고 지점에 50㎝ 깊이로 가스관을 묻었으며 이 관을 보호하는 이중관(두께 5㎝), 콘크리트 보호판(두께 10㎝)과 지면의 거리도 35㎝라 문제가 될 게 없다고 맞선다.

양쪽은 어느 법이 ‘상위법’인지를 놓고도 공방을 이어갔다. 해운대구는 “부산도시가스 측이 내세우는 법령은 산업통상자원부령으로 정하는 시설 기준이 포함된 것이므로 도로법이 상위법”이라고 강조했다. 반면 부산도시가스는 “매설 기준은 엄연히 도시가스법에 명시돼 있다. 도로 관리를 위한 일반 법령인 도로법보다 가스 배관 업무의 세부 사항이 적힌 도시가스사업법이 우선되는 게 이치에 맞다”고 받아쳤다.

전문가들은 양쪽이 소모적 공방을 중단하고 사고 재발 방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특히 이번에 사고가 난 굴착 공사는 허가 절차가 생략돼 빚어졌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통상 공사 업체가 공사 지점의 가스관 등 매설물을 확인한 뒤 관련 자료를 첨부해 담당 구청에 굴착 허가를 신청한다. 하지만 이번 공사는 구청 부서 간 협조공문만 주고받은 채 이뤄졌다”고 꼬집었다. 이에 대해 해운대구는 “허가 과정이 없었던 건 맞다. 비슷한 문제가 없도록 방안을 마련하겠다”고 해명했다.

이승륜 기자 thinkboy7@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