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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철의 낱말로 푸는 인문생태학]<393> 테레우스와 테세우스:선과 악

  • 국제신문
  • 디지털콘텐츠팀 inews@kookje.co.kr
  •  |  입력 : 2019-01-03 20:03:57
  •  |  본지 3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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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신화는 대개의 건국신화처럼 순진하지 않다. 폭력 섹스 광기가 난무하는 요지경 세상이다. 서른 마흔 쉰 예순 등 이상 ㄴ 받침 나이가 되어야 읽을 수 있는 29금급 내용이 수두룩하다. 그 중에서도 가장 엽기적 이야기가 있다. 메디아가 아들 둘을 죽인 사건은 이에 비하면 새 발의 피(鳥足之血)다.

테레우스는 트리키아의 왕이었다. 아테네가 어려울 때 도왔다. 이 일로 테레우스는 아테네 왕의 딸과 결혼했다. 그녀는 여동생이 보고 싶었다. 테레우스가 처제를 데리러 아테네로 떠났다. 형부는 처제를 본 순간 욕정이 발동했다. 트리키아로 데려오자마자 가두어 강간했다. 말 못 하게 혀를 잘랐다. 그녀는 수를 놓아 언니에게 억울함을 전했다. 언니는 복수한다. 죽인 아들의 인육으로 고기를 만들어 식탁에 올렸다. 맛있게 먹은 테레우스는 아들을 찾았다. 처제가 아들 머리를 들고 나타났다. 아내는 당신 배 속에 있다고 말했다. 테레우스가 미쳐 날뛰었다. 이를 본 제우스가 셋을 새로 변신시켰다. 자매는 나이팅게일과 제비로, 테레우스는 매로…. 저지른 죄에 비하면 벌도 아니다.
그리스신화는 권선징악 이야기가 아니다. 악하다고 반드시 벌 받고 선하다고 반드시 상 받지 않는다. 테세우스는 악당들을 처단한 영웅이며 아테네를 번영시킨 선한 왕이었지만 그의 말년은 매가 된 테레우스보다도 못하다. 자살했는지 암살당했는지 확실치 않다. 그런 점에서도 그리스 신화는 29금급이다. 다만 29세 이하라면 뻔한 생각에서 벗어나 읽을 고전이다. 이리저리 요모조모 왔다갔다 폭넓게 사유하며….

경성대 커뮤니케이션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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