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녀(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연합뉴스 제공

울산의 한 어촌마을에는 ‘가짜해녀’가 있다. ‘가짜해녀’들의 진짜 정체는 PC방 사장, 체육관 관장, 택시기사, 컴퓨터 프로그래머, 경비원까지 다양하다. 심지어 나이가 많고 거동이 불편한 주민이나 말기 암 환자까지 ‘해녀’에 포함돼있다. 이들은 왜 진짜 정체를 감추고 ‘가짜해녀’ 행세를 하는 것일까

‘가짜해녀’로 등록만 하면 돈을 준다는 유혹에 넘어가 버린 것이다. 주민들은 ‘가짜해녀’로 등록한 대가로 1인당 적게는 10만 원에서 많게는 100만 원까지 돈을 받아냈다.

하지만, 꼬리가 길면 잡히는 법.

15일 울산해양경찰서는 나잠어업(해녀) 조업 실적을 허위로 꾸며 주민들이 각종 해상 공사의 피해 보상금을 받도록 한 마을 어촌계장 A(62)씨와 전 이장 B(60)씨, 전 한국수력원자력 보상담당자 C(62)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 혐의로 구속했다고 밝혔다.

또 나잠어업 피해 보상금을 부당 수령한 가짜 해녀 등 주민 130명을 사기와 사기 미수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고 밝혔다.

해경에 따르면 A씨 등은 2016년에 2011년~2013년 간의 나잠어업 조업 실적 자료를 허위제작해 울산시 울주군 서생면의 한 마을 주민들이 수십억 원대의 어업 피해 보상금을 받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집단의 도덕성은 결여되어 ‘공동의 목표’를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울주군 서생면 일대 어촌은 모두 ‘어업 피해 보상금 수령’이라는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조업 실적 자료를 제출하는 데에 열과 성을 다했다.

그런데 이 마을 주민들은 조업 실적이 없거나 실적을 제대로 기록하지 않은 탓에 보상금을 받지 못하게 됐다. 공동의 목표를 달성하는 데 실패한 것이다. 이 마을 주민들은 이에 굴하지 않고, A씨 등과 공모해 실적을 허위로 만들어냈다.

A씨와 B씨는 고리원자력본부에서 12년 간 보상 민원업무를 담당한 전직 한수원 직원 C씨와 함께 A4용지 10박스 분량의 개인별 허위 조업 실적을 만들었다.

C씨는 A씨 등으로부터 2007년 고리원전과의 협의 보상 시 작성됐던 총생산량 자료, 해녀 명단, 자체적으로 정한 주민별 보상 등급표 등을 건네받고, 해녀들이 작업하기 좋은 물때가 기재된 기상 자료를 입수해 날씨가 좋은 날을 골라 생산량을 임의로 분배하는 방식으로 허위 조업 실적 자료를 ‘창조’했다.

마을 주민들은 이 실적을 개인 노트와 메모지에 받아 적어 자신들의 진짜 조업 실적처럼 꾸며냈다.

이 마을에는 나잠어업 신고자 약 130여 명 중 80%인 107명이 가짜 해녀로 밝혀졌으나, 진짜 해녀들도 허위 조업 실적을 만들어내는데 가담했다.

공모자들에게 지급된 어업 피해 보상금은 모두 14억여 원에 이른다.

해경은 또 옆 마을에서도 유사한 방식으로 허위 조업 실적을 꾸며 7억여원의 보상금을 받은 것을 확인하고, 어촌계장과 해녀 등 50여 명을 입건해 수사를 벌이고 있다.

해경은 부당하게 지급된 어업 피해 보상금이 더 있을 것으로 보고 울주군의 다른 마을에 대해서도 수사를 확대할 예정이다.

해경 관계자는 “이번 사건은 마을 주민 전체가 범죄에 가담한 것”이라며 “철저한 추가 수사를 통해 국민의 세금인 보상금이 허술하게 지급되는 것을 막고, 어업 피해 보상금은 ‘눈먼 돈’이라는 어촌마을의 그릇된 인식을 개선하겠다”고 말했다.

이주연 인턴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