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통풍 중요한 유화 둘둘 말려있고
- 주요 사료 여기저기 쌓아놓기만
- 3층 사료보관실도 이미 포화상태
- 민주사료관 건립 재추진 절실

25일 부산 중구 영주동 민주공원 민주항쟁기념관 2층 수장고(收藏庫·귀중한 것을 소중하게 보관하는 창고)는 그 명칭이 무색하게 미술품이 어지럽게 놓여 있었다. 이 수장고에는 부마민주항쟁, 5·18민주화운동 등 민주주의 역사가 담긴 민중미술품 675점이 보관돼 있다. 국립 현대미술관보다 민중미술품 수가 더 많다. 하지만 규모가 33㎡(10평) 남짓이어서 체계적 관리는커녕 온습도 관리도 제대로 안 돼 작품이 훼손될 위험이 크다. 민주공원 관계자는 “항온·항습기를 가동하지만, 공간이 좁아 제대로 역할을 못 한다”고 말했다. 실제 이날 취재팀이 수장고에 들어가 보니 습도가 높아 눅눅함이 피부로 느껴질 정도였다.

	25일 창고를 방불케 하는 부산 민주공원 수장고에 민주화운동 사료가 보관돼 있다. 김성효 전문기자 kimsh@kookje.co.kr

통풍이 잘돼야 하는 유화는 둘둘 말려 구겨진 채로 쌓여 있었다. 지난해 남북 정상회담 당시 판문점 평화의집에 걸려 화제가 된 판화 ‘산운’의 작가인 김준권 화백 작품 10여 점도 이곳에 있지만, 종이상자에 담겨 빛을 보지 못한다. 이 밖에 이철수 화백의 판화, 4·3항쟁을 주로 다룬 강요배 화백의 작품, ‘3대 민중미술가’라 불리는 홍성담 이인철 박불똥 화백 등의 작품도 ‘창고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3층 사료보관실도 수장고와 같은 33㎡ 크기다. 민주화운동 관련 자료와 사진, 공판 기록 등 6만9200여 점이 여기에 보관돼 있다. 동아대 민주항쟁과 부마항쟁 구술 자료를 비롯해 인혁당 사건 공판 자료 등 주요 사료가 상자에 담긴 채 방치돼 있다. 문서고가 포화 상태에 이르러 새로 들어오는 자료는 사료보관실과 사무실 등 이곳저곳에 나눠 쌓아두는 실정이다. 지난해부터는 촛불집회 관련 아카이브를 운용하지만, 공간이 없어 온라인으로만 진행 중이다. 민주공원 관계자는 “광주5·18민주화운동기록관은 체계적 관리 덕에 소장 기록물이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됐다”며 “반면, 민주화운동의 중심인 부산은 사료 보존·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아 민주주의 역사 연구와 교육에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 때문에 민주공원 내 민주사료관 건립은 2007년부터 논의됐다. 하지만 예산 확보에 어려움을 겪어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진척이 없다.

민주공원은 올해 부마항쟁 40주년, 민주공원 개관 20주년을 맞아 ‘부산민주사료관’ 건립을 다시 추진한다. 영주동 중앙공원 내 전체면적 6600㎡ (2000평), 지하 1층, 지상 3층 규모로 신축을 계획 중이다. 예산은 195억 원가량이 들 것으로 추산된다. 이와 관련해 부산시의회는 지난해 ‘부산광역시 민주화운동 기념 및 정신 계승에 관한 조례’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김종기 민주공원 관장은 “부산의 민주화운동 관련 자료가 마땅한 사료관이 없어 여러 시민단체에 흩어져 있다”며 “민주공원이 민주주의 가치를 기념·계승하고 교육하기 위해서는 사료관 건립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황윤정 기자 hwangyj@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