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0년 전 모교서 익힌 절약 생활화
- 생활비 아껴 매달 100만 원 저축
- 1억 원 모아 학교발전기금 기탁

부산진일신여학교(현 동래여고)를 졸업한 아흔 살 선배가 새파란 후배들을 위해 10년간 부은 적금통장을 깼다. 올해는 부산진일신여학교가 주도한 3·1만세운동이 100주년을 맞은 때여서 의미를 더했다.

부산 동래여고 49회 졸업생 김부기(90·오른쪽) 여사가 10일 자택에서 학교 발전기금 1억 원 기탁을 약속하며 환하게 웃고 있다. 신심범 기자

동래여고는 졸업생 김부기(90) 여사가 학교 발전기금 1억 원을 기탁했다고 10일 밝혔다. 동래여고는 김 여사의 뜻에 따라 이날 자택을 찾아 기탁서를 작성했다. 김 여사는 1991년부터 1995년까지 동래여고 총동문회장을 지냈다.

동래여고 49회 졸업생인 김 여사는 지난 10년간 꾸준히 적금을 부었다. 생활비를 아껴 하루 5만~6만 원씩, 한 달에 100만 원가량을 차곡차곡 모았다. 먼저 세상을 떠난 김 여사의 남편은 부산에서 시내버스 업체를 운영했다. 경제적으로 유복한 환경이었지만, 김 여사는 70여 년 전 동래여고에서 익힌 ‘근검절약’을 아흔이 될 때까지 실천했다. “행주를 삶다가 태워서 군데군데 해지면, 손수건을 덧대 사용하지 절대 돈을 주고 새로 사지 않는다”는 게 김 여사의 말이다. 김 여사의 장손자 신주용(40) 씨는 “할머니의 검소한 생활 덕에 나도 양말을 기워 신는 처지”라고 했다.

원래 김 여사는 내년 3월께 발전기금을 낼 계획이었다. 그즈음이 적금 만기일이어서다. 오래전부터 그맘때 모교에 기탁금을 내겠다는 뜻을 밝혀오기도 했다. 그랬던 김 여사의 뜻은 지난달 31일 바뀌었다. 그날 열린 동래여고 총동창회에서 김 여사는 1년 가까이 앞당겨 발전기금을 내기로 마음먹었다. 고령인 탓에 “언제 다시 학교에 나올 수 있을지 모르지 않느냐”는 게 김 여사의 설명이다.

남다른 모교 사랑의 이유로 김 여사는 ‘선생님’을 꼽았다. 막 일제로부터 해방됐을 때 고등학교에 다닌 김 여사는 당시 선생님에게서 받은 가르침이 아흔 평생을 살아가는 데 큰 영향을 줬다고 했다. 김 여사는 “여러 훌륭한 선생님을 따르며 바른 가르침을 받았다. 그때의 영향이 평생 이어졌다”며 “이번 기탁금도 동래여고 선생님이 제자를 위해 잘 써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동래여고 최병규 교장은 “귀중한 기금을 주신 만큼 올해 말까지 적절한 사용처를 찾아 학교 발전을 위해 쓸 것”이라고 약속했다.

신심범 기자 mets@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