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마민주항쟁 이후 수십 년 동안 전과자 낙인을 안고 살아온 관련자가 재심을 통해 잇따라 무죄를 선고받고 명예를 회복하고 있다. 하지만 당시 군경의 불법 구금과 가혹행위에 관한 국가배상은 재판부마다 엇갈린 판단을 내놔 피해 회복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2일 법조계에 따르면 부산지법 창원지원은 소요·공용건조물 방화 혐의로 기소된 A(66) 씨의 재심 절차를 밟고 있다. A 씨는 1979년 10월 17일 부산 중구 남포동에서 “유신 철폐” “독재 타도” “학원 자유 보장” 등 구호를 외치는 시위에 가담하고, 남포파출소에 불을 지른 혐의로 기소됐다. 군법원에 넘겨진 A 씨는 징역 3년을 확정받았다.

평생을 전과자로 살아온 A 씨는 세상을 떠나고서야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게 됐다. 그동안 군사재판은 검찰이 재심 청구를 안 했고, 유족도 이 같은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그러다 최근 검찰이 이례적으로 A 씨를 직권 재심 청구하면서 명예 회복의 길이 열렸다.

부산지검은 지난해에만 부마민주항쟁 관련자 5명을 직권으로 재심 청구해 현재까지 1건의 무죄 판결을 끌어냈다. 올해는 형사 보상 청구 자격이 없는 ‘기소 유예자’ 10명을 직접 찾아 재수사하고 ‘혐의없음’ 처분을 내렸다. 이들은 구금 일수에 따라 하루 30만 원가량 보상금을 받는다.

독재정권에 맞섰다는 이유로 법정에 서야 했던 이들의 명예 회복은 순조롭게 이뤄지고 있지만, 당시 불법 구금과 고문에 대한 국가배상은 갈 길이 멀다. 국가배상 청구 소멸시효를 놓고 재판부마다 다른 판단을 내놓고 있어서다.

지난 5월 부산지법은 부마민주항쟁 관련자 B 씨 등 6명과 가족이 당시 40~130일 불법 구금당한 걸 이유로 제기한 국가배상 소송에서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반면 부산지법 동부지원은 지난달 부마민주항쟁 관련자 C 씨에게 국가가 2000만 원의 위자료를 배상해야 한다고 판결했다.

법원 판결을 가른 건 소멸시효(3년) 기산점이었다. B 씨 재판부는 과거사정리법에 따라 처음 제기된 이모·차모 씨의 부마민주항쟁 피해 진실 규명 결정일인 2010년 5월 25일, C 씨 재판부는 C 씨가 항쟁 관련자로 인정받은 2015년 10월로 판단했다.

부산지역 한 변호사는 “소멸시효는 ‘권리 위에 잠자는 자는 보호하지 않는다’는 취지”라며 “이모·차모 씨 소멸시효를 다른 사람에게도 똑같이 적용하는 건 엄연한 잘못”이라고 지적했다.

B 씨는 “소멸시효 등 긴급조치 배상 판례는 양승태 전 대법원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1조8000억 원 이상 국가재정을 아꼈다’며 국정운영 협력 사례로 들었던 판결”이라며 “대법원 판결을 바꾸겠다는 결심으로 항소심을 준비 중이다”고 말했다. 이어 “국가배상 문제와 함께 30일 이상 구금자는 유공자로 예우한다는 ‘부마민주항쟁 유공자 예우에 관한 법’ 국회 처리도 늦어지고 있다”며 “우리는 단순히 금전 보상을 받고 싶은 게 아니라 민주화를 위한 희생을 인정해주길 바랄 뿐이다”고 했다. 최승희 기자 shchoi@kookje.co.kr